김영란법이 던져준 논쟁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이완구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완구 총리의 '녹취록'에 등장한 김영란법이 지난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마자 모든 언론이 기다렸다는 듯이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다. 더나아가 김영란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 뒤 정부로 이송되어 대통령이 서명한 뒤에 공포되는 절차가 완료되기도 전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법이 정한 절차상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더라도 대통령의 '거부권'이라는 마지막 견제장치가 있지만, 김영란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0'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김영란법 국회통과 이틀 뒤인 5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접수했다.
청구서에는 김영란법을 통한 규제대상에 언론사를 포함시킨 김영란법 제2조가 헌법 제21조 2항(언론의 자유)와 헌법 제11조(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부정청탁'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 제5조는 헌법 제12조 1항(명확성의 원칙), 배우자 금품 등 수수시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하도록 한 제9조·제22조·제23조는 헌법 제19조(양심의 자유)와 헌법 제13조 1항(자기책임의 원칙)을 각각 위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대한변협의 설명은 민간 영역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이루어질 염려가 있고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할 우려가 매우 높아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공직자의 범위에 그 성격이 전혀 다르며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야 할 언론을 포함시켜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취재원의 통상적인 접촉이 제한되고, 언론의 자기검열이 강화될 뿐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언론의 통제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덧붙이고 있다.
만일 공공적 성격을 이유로 언론을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라면 금융, 의료, 법률 등 민간영역 역시 적용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면서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므로 위헌 무효라는 것이 변협의 주장이다. 쉽게 말해서 '언론'을 왜 포함시켰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직자로 하여금 사실상 배우자를 신고할 것을 강제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형벌의 자기책임 원칙 역시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현재 입장은 절차상 공포된 법도 아닌데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법 제정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인데 당연한 논리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곧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그 사이에 대통령이 서명하고, 정부가 공포하면 법으로 제정절차가 완성된 뒤에는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장래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헌재가 헌법소원심판이 접수된 시점을 기준으로 각하를 하게 될지, 본안심리를 하게 될지도 관심대상이 될 것 같다.
김영란법이면 공직사회 부정부패 없어지나?…법 보다 사회공동체의 '교육'
하여튼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사슬을 끊겠다고 출발한 김영란법. 그 취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옆나라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나서서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저우융캉같은 거물급 정치지도자를 한칼에 날리는 걸 보면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법은 '전지전능'한 마법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 가이드라인(약속)이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법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가능성이 높아진다. 애초부터 모든 국민들에게 성직자와 같은 도덕률을 요구한다면 그건 지켜질 수 없는 사법(死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구성원들이 지키기 어렵다면 결국 대부분 못 지키게 되는 것이고, 엄격하게 적용하면 많은 사회 구성원들을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결과만 예정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오히려 더 많은 편법과 또다른 부정수단이 생기는 쪽으로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클 뿐이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정신'의 문제인 셈이다. '정신'의 문제는 법으로 다룰 수 없다. 오랜 세월 사회공동체적 '교육'을 통해 이뤄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예를 들어 줄서기를 하는 데 새치기를 하면 안된다고 교육을 받고 자란 사회공동체에서는 부정한 새치기를 누구도 하려고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군가 새치기를 하면 줄을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새치기 하는 사람에게 따가운 눈총을 주게되기 때문에 누구도 새치기를 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또한 부정부패는 시장논리에서 볼때 수요자가 있기때문에 공급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란법의 발상은 공급을 차단하겠다는 단순한 생각, 탁상논리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한 청탁'의 이유는 요청하는 사람이 있기때문에 들어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양비론'이 아니라 부정한 청탁의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김영란법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한 청탁을 들어 준 공직자 뿐 아니라 청탁을 한 사람도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방점은 부정한 청탁을 받아 준 공직자다.
그런데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이미 공직자윤리법이 있고, 뇌물수수에 대해 형법의 처벌조항이 있다. 오랜 시간 누적된 법원의 사례별 판례도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김영란법이 등장하면서 웃기는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김영란법 발의를 주도한 '김영란' 전 대법관(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은 공직자를 타켓으로 법안 초안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 적용대상을 놓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점점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그 논란이 법안 통과 이후에도 계속 증폭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언론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논란의 핵심은 '김영란법' 규제대상에 왜 언론이 포함되는냐다.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언론이 포함되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공직자'의 범위와 규제대상을 놓고 형평성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시작된 해프닝같은 코미디 입법이라는게 한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를 구분하는 것이 개념적으로나 법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규제대상에 언론사와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된 사연
KBS나 EBS는 언론사다. 연합뉴스도 언론사다. 그것도 힘이 막강한 언론사다. 그리고 이 기관들은 국회 국정감사를 받는 피감기관이기도 하다. 왜? KBS는 '한국방송공사'다. '공사'는 기업이지만 공적 업무 수행을 위해 정부가 출연한 공적기업이다. 연합뉴스도 특별법에 의해 국가예산을 지원받는다. 다시 말해서 '공무원'은 아니지만, 국가예산을 받는 '공공기관'이다. 이들 언론사들은 국가의 사무를 위탁받아서 하는 공적 업무영역이 있기때문에 '공직자'에 포함될 수 있다. 특히 KBS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준조세나 다름없는 '시청료'까지 강제징수하고 있는 기관이다.
그래서 KBS, EBS, 연합뉴스 등의 언론사는 김영란법의 규제대상이 되는 것이 맞다. 그런데 MBC나 SBS도 힘이 막강한 언론사다. 언론사인 것은 같은데, 주인이 다를 뿐이다. 국가가 주인이냐, 민간인이 주인이냐하는 것이 김영란법의 규제대상이 되느냐, 안되느냐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우습다. 다시말해서 김영란법을 만들자고 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만들고자 하는 이상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국공립학교 교원도 마찬가지다. 국공립학교 교원은 신분이 '공무원'이다. 사립학교는 어떤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대부분 국가예산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 국가에서 사립학교 시설물들을 짓는데 국가예산을 대폭 지원해주고 있다. 국공립학교들이 다 소화할 수 없는 '공교육'이라는 국가의 사무를 위임받아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공직자'에 개념적으로 포섭될 수 있다. 같은 업무를 하는데 국공립학교 교사는 '공무원'이니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고, 사립학교 교사는 제외한다면 그것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위헌의 소지도 있다. 그러나 사립학교 이사장이나 이사는 직접 공교육의 업무를 하지 않는다. 사학재단의 관리자일 뿐이다. 그래서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현재 언론에서 문제삼고 있는 논란들에 대해서 김영란법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해보면 당연히 논의될 사항들이었고,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언론에서는 김영란법의 규제대상에서 국회의원이 제외됐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무엇이 제외됐다는 말인지 내용이 없다. 왜?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니기때문이다. 국회의 역할은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고충민원을 정부에 전달하고 관철되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가 '부정한 청탁'으로 규제된다면 국회는 존재 의의를 잃게 되는 것이다.
'김영란법',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김영란법의 제정 논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본 입장에서 늘 생각했던 것은 "김영란법을 왜 만들까?"였다. 있는 법을 보완하고, 수정하지 않고 덜컥 새로운 제정법을 만들었을까? 우리나라는 대륙법 계통의 성문법 국가이기 때문에 헌법과 육법이 갖춰져 있지만, 영미법 국가처럼 개별입법이 너무 많아서 육법이 사문화될 지경이다. 공직자윤리법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을 보완해서 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통과되면서 공직사회는 조용하고, 언론은 끓는 냄비와 같은 반응이다. 규제대상에 왜 언론이 포함되었느냐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데 익숙한 언론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평가나 규제를 받는다는 것은 참 어색할 것이고, 예상됐던 불복종(저항)이다.
쉽게 말해서 그동안 청탁에 시달린 쪽은 공직사회이고, 규제의 특 밖에서 많은 압력과 청탁을 했던 것은 언론이었다. 사실 김영란법의 규제대상은 공직자에서 출발했지만, 규제화살은 언론으로 돌아간 꼴이다. 솔직히 '위헌'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공직자적 위치에 있는 언론인을 규제하고, 그렇지 않은 언론인은 규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보이지만 그렇다고 민간영역을 공직자처럼 규제한다는 것도 맞지 않다.
김영란법이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여튼 이 논란의 근본 원인은 김영란법이 발의 됐기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에서 오랜 시간 논의가 된 것이고, 김영란법을 발의한 주체는 '국민권익위원회'다. 즉 정부다. 그런데 욕은 국회가 먹는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부나 국회나 '국가'의 개념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잡아서 대표격으로 만만한 국회를 욕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한 국민, 건강한 사회라면 그런 구분을 해서 비판하고 평가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팩트가 사라졌다. 김영란법이 발의돼 국회에서 논의될때는 빨리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난리였던 언론들이 이제는 앞다퉈서 문제 있는 법안이라고 난리다. 이렇게 팩트가 사라진 사회는 팩트를 다루는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소장환(free5785@)
'세상궁시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철수 '새정치'? ... 차라리 표창원... (6) | 2015.12.26 |
---|---|
1987년 6·29 그리고 2015년? 아몰랑~ (0) | 2015.06.29 |
응답하라, 쌍차!…김정욱·이창근 힘내라! (2) | 2015.01.23 |
세월호 특별법 처리 못하는 국회는 "관람"하는 곳…'동물원' 같은 곳? (0) | 2014.07.16 |
27년 전 6월의 기억... (0) | 2014.06.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