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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마시고

라면덮밮? 라면국밥?

by 사랑화니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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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라면덮밥...

지금의 라면덮밥은 '라면'의 '면'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가 있지만, 원조 라면덮밥은 사실 라면에 찬밥을 말은 라면 '국밥'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렇다.

전북대 다니던 학창시절이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됐으니, 오래 됐다.

최류가스 자욱한 대학에서 도망치듯 군입대하고, 세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제대해서 법대에 복학하니 스물 다섯...

다시 돌아온 학교에는 좋아했던 정귀 형도 대한이 누나도 없었다. 그리고 후배들이 있었다.

1992년 군입대 전엔 '사회구성체 논쟁'과 함께 화염병 제조와 투척법이 술자리 안주였지만, 1995년 복학 당시 대학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과 함께 '페미니즘'과 '인권'이 화두였다.

이진경 교수의 '철학과 굴뚝청소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은 것도 이때쯤인가. 아울러 헤겔 변증법적 사유에 대한 책들도 좀 읽어보고...

지금 생각하면 빈털털이 대학생들이 술자리에서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한 고상함이었던 듯. '고육지책'이 아닌 '고상지책'이랄까.

하여튼 풍물동아리이면서 좌도굿인지 우도굿인지도 모르고, 그저 아는 건 "땅도 땅도 내땅이다 조선 땅도 내땅이다"가 전부였던 나는 대운동장에서 풍물연습을 마치면 후배들과 저녁을 해결하러 라면을 먹으러 자주 갔다.

돈도 없었고, 풍물패가 파스타 먹으러 가는 건 왠지 이상하니까.

그렇게 정문(지금 구정문) 앞 분식집에서 둘레둘레 앉아 라면을 먹으면 혈기왕성한 우리에겐 늘 부족했다. 그래서 국물이 많은 라면을 좋아했고, 인심 좋은 사장님께 남은 밥을 얻어서 말아 먹었다. 그야말로 자취방 스타일이지.

어느 날, 이것이 정식메뉴가 되서 '라면덮밥'이 등장했다. 정확한 기억은 잊었지만, 아주 약간의 가격이 붙었던 것 같다. 아마도 부담이 없는 선에서 배고픈 대학생들이 미안해하지 말라는 사장님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당시엔 이름도 멋지게 느껴졌다. 국밥보다는 덮밥이 신선하니 좋았다. 그리고 라면덮밥은 대학가 분식에서 보편적 메뉴가 됐다.

몇해 뒤 사법고시를 준비한답시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훗날 행시에 합격한 동아리 선배 민호 형을 만나서 신림동 초행길이 외롭지는 않았었다.

당시 고시촌에서도 호남학생들이 많이 있는 곳과 영남 학생들이 있는 곳이 약간 구별되어 있었다. 호남구역은 좀 열악했다. 가난했으니까.

그 중에서도 전북대 학생들이 자주 가는 분식집에는 라면덮밥이 있더라. 다른 분식집에는 없었다.

전북대 법대생들이 라면덮밥을 신림동까지 끌고 올라간 것일까. 그리고 그 곳에서는 짜파게티 덮밥도 있었다. 내겐 신세계였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 전북대 상가에는 분식집도 거의 없는 것 같고, 라면덮밥같은 메뉴는 잊혀진 듯 싶다.

겨울비 내리는 날의 라면이 먹고싶어서 라면을 마주하니, 옛추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이 들어가는 징후다. ㅋㅋ

**라면덮밥의 원조 이야기는 순전히 개인적은 의견이니,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ㆍ사진=화니화니(free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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