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극장가에서 '김원봉' 신드롬을 일으키며 천만관객을 넘었던 영화 '암살'(2015, 최동훈 감독). 나는 해가 바뀌어서야 집에서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드러누워서 케이블TV를 통해서 봤다.
"영화에서 의열단 김원봉이 예전 홍콩영화 영웅본색 주윤발처럼 날아다니는 건가?"
잔뜩 궁금증을 갖고 봤다. 하지만 결론은 '꽝'! 나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영화에서 김원봉(조승우 특별출연)은 그다지 비중있는 역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킬러'들을 보내는 '보스'같은 역할인데, 조승우라는 배우의 비주얼에 관객들이 반응한 것일까.
영화는 역시 '픽션(fiction)' 아니겠나. 다만 71년생 동갑내기 최동훈 감독이 2015년에 '암살'이란 영화를 내놓은 의미는 무엇일까. 2015년은 1945년으로부터 70년. 그러니까 광복 70주년이다. 일제강점기 36년이란 세월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이제 잊혀질 법도 한데, 2015년에 마흔 다섯살인 최동훈 감독은 무슨 이유로 영화 '암살'을 꺼냈을까.
그건 아마도 현재 상황이 여전히 일제시대 진행형이라는 의식때문은 아닐지. 광복 70주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8·15를 '광복절'이라고 해야 할지, '건국절'이라고 해야 할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하나의 '조선'이었던 북한은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시간의 기준을 '평양시'로 바꿨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동경시'를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2015년을 기점으로 북한과 남한은 같은 한반도 안에서도 서로 30분의 시간차를 두고 살아가게 됐다. 북한은 광복 70주년에 시간의 해방을 이뤘고, 대한민국은 아직 '일제 시간'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하여튼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최동훈 감독이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영화 '암살'…왜곡된 '친일 역사'를 저격하라!
영화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결사대 대장인 '염석진'은 독립운동 동지들을 배신하고 일제의 주구가 되어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고문하고, 해방 이후에는 경찰의 고위 간부가 됐다. 염석진의 변절은 '반민특위' 재판과정에서도 증인을 살해하고,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된다. 열받는 현재의 역사다.
다시 햇빛 속으로 나온 염석진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시장통(세상)으로 걸어들어오고 마음껏 물건을 고른다. 이때 비밀결사대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역)이 나타나 골목 속으로 사라지고, 강인국의 딸 '미츠코'(전지현 역)를 따라간 염석진은 뒷골목에서 옛날 부하 명우와 안옥윤과 마주하게 된다. 중국 상하이 뒷골목에서 자신이 죽인 줄 알았던 명우와 마주친 염석진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안옥윤과 명우는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다.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황량한 들판으로 도망가던 염석진은 두 사람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이 부분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이라도 시켜주고 싶은 가상의 역사다. 그래서 영화는 안옥윤과 명우가 염석진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없이 그대로 끝난다.
이렇게 최동훈 감독은 광복 70주년에 잘못된 친일의 역사를 저격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5년이 며칠 남지 못한 12월 29일 뉴스에서는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이 제공하는 민간기금 10억엔을 받고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합의'는 우리의 역사가 아직도 일제시대 진행형이라는 아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꽃을 든 어린 소녀와 '위안부'
'암살'이라는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흥행을 위해 만든 상업영화다. 그렇지만 곳곳에 역사적 메시지를 복선처럼 영리하게 깔아놓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무거운 역사적 주제를 영화적 설정을 통해 관객들의 시선 앞에 내놓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하와이피스톨(하정우 역)은 변절자 염석진으로부터 임시정부의 비밀결사대 3명을 없애달라는 청부를 받고 경성으로 오는 기차에서 일본군 대위 '카와구치'를 만난다. 만주에서 일본군의 청산리 전투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군 사령관 '카와구치'의 아들인 그는 조선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경성으로 가는 길이고, 만주에서 조선인을 죽인 숫자를 말하면서 손가락 세 개를 편다.
비밀결사대 3명의 타겟은 친일파 사업가 강인국과 를 암살하는 것. 비밀결사대 리더인 안옥윤은 강인국의 쌍둥이 딸 가운데 한 명이고, 경성에서 아버지 강인국과 살고 있는 딸인 조선인 '미츠코'는 아들 카와구치 대위와 결혼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의 만남에 앞서 안옥윤과 하와이피스톨은 이미 상하이 술집에서 마주친 사이.
복잡하게 얽힌 인연 속에서 하와이피스톨은 염석진의 청부를 실행하고, 결국 안옥윤 비밀결사대의 거사를 방해하게 된다. 모든게 엉망이 되고 우여곡절 끝에 상하이에서의 인연으로 부상당한 안옥윤을 하와이피스톨이 구해주게 되는 건 영화의 러브라인 구성상 어쩔 수 없고. 하여간 영감(오달수 역)과 함께 경성을 빠져나가려던 하와이피스톨은 우연히 카와구치 대위와 다시 조우하게 된다. 그는 비밀결사대 일행과의 총격전으로 팔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하와이피스톨에게 자신의 결혼식 경호를 부탁하는데. 이때 꽃을 든 소녀들의 한 무리가 지나간다. 이때 가장 어린 소녀가 카와구치와 부딪혀 양동이를 쏟게 된다. 어린 소녀는 카와구치에게 계속 허리를 굽히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지만 '일본군' 카와구치는 예쁜 소녀를 일으켜 세워서 권총으로 쏴버린다.
이 장면에서 카와구치 대위는 하와이피스톨에게 자신이 죽인 조선인의 숫자가 세 명이 아니라 '삼백명'이라고 말하고, 하와이피스톨의 눈에는 분노가 차오른다. 소녀의 죽음은 살인청부업자 하와이피스톨이 독립운동 비밀결사대와 운명을 함께 하게 되는 모티브다.
누구라도 안타까움과 욕설을 뱉지 않을 수 없는 이 장면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일제강점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조선을 비롯한 점령지 곳곳에서 어린 소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갔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어린 소녀들은 일본군대의 성적 노예로 학대를 받았으며, 전선 곳곳에서 살해당했다. 꽃을 든 어린 소녀가 상징하는 것은 일본군대에 의해 강제로 순수성을 짓밟힌 일본군 '위안부'다.
1971년생 영화감독과 '암살', 그리고 2015년
2015년을 놓고 영화 '암살'과 더불어 오버랩되는 것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는 2017년부터 학생들이 배우게 된다. 일본군 장교 출신의 1917년생 박정희(일본명 다까끼 마사오)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에 등장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나는 반대했다. 왜 반대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든 '국사(國史)'였다. 그러니까 '국정 역사교과서'였다. 그 국사책은 삼국시대를 가장 많이 저술하고 있고, 근현대사에 대한 기술이 거의 없었다. 특히 고대사나 삼국시대 역시 식민사관에 바탕을 둔 저술이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다만 그런 기억때문에 반대했던 걸까. 설마 그러기엔 명분이 약하다.
문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정부'를 경험하고, 대한민국의 경제가 세계 10위권 무역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우경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인 '뉴라이트' 세력의 등장과 그들의 친일역사관을 나는 우려한다. 일제시대를 통해 조선의 자본주의가 싹트고, 근대적인 산업발전을 통해 봉건시대를 뛰어넘게 됐다는 뉴라이트의 친일역사인식은 결국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만들어냈다. 그리고 광복 70주년에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협상타결이라는 상황까지 왔다. 일제 식민통치를 통해 고통받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인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인데, 가해자의 사과 없이 피해자를 대리한 우리 정부가 나서서 '미래를 위해 이제 그만하지'라는 합의가 상식적인가. 이런 비상식의 상황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를 만들게 될까봐 나는 반대했다.
어쩌다 이리 됐을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80년대 대한민국 사회는 서슬퍼런 독재정권 아래서도 민주화에 대한 바람이 불었던 시절이었다. 깨어있는 학교 선생님들이 '전교조'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책에 없는 내용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전국의 성당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도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와 비디오를 상영했었다. 대학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데리고 공부모임을 했고, 서점에서는 근현대사에 대한 책들이 팔려나갔다. 나도 이렇게 우리의 근현대사를 배웠다. 아마 최동훈 감독도 그렇게 배웠겠지.
1971년생은 전두환 정권의 '교복자율화' 세대이면서 대학 운동권의 막내세대이고, 1997년 IMF외환위기로 인해 궁극의 백수로 내몰린 '88만원세대'의 원조다. 2015년 마흔 다섯살 감독의 눈에 이토록 비틀린 현실의 대한민국 원죄는 '친일파'에 있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왜곡된 역사를 저격하고 싶어서 '암살'을 내놓은 것은 아닐까. 동갑내기 관객의 그냥 생각이다.
/글=소장환(free5785@), 사진=포털 다음(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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