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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머문곳

쎄시봉.."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by 사랑화니 201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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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2016년의 첫 일요일.

늦잠에서 깨어나 거실에서 뒹굴다  TV영화채널에서 우연히 본 영화 '쎄시봉'.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이라는 등장인물의 이름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눈이 꽂혔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히 남아 있는 저 웨딩케익 

그 누가 두고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 트윈폴리오 '웨딩케익' 중에서 -


쎄시봉의 '뮤즈' 민자영으로 인해 수 많은 포크송이 탄생했고, '웨딩케익'이라는 번안곡도 만들어졌다는 영화 스토리에 푸욱 빠졌다. 민자영과 오근태의 사랑이야기가 어쩌면 진부한 러브라인이기는 하지만, 왠일인지 푹 빠져드는 걸. 그리고 살포시 눈물이 흐르더라. 이건 뭐지? 젠장 중년이 되니 여성호르몬이 많아지는 건가. 

 
영화 줄거리? 직접 보시라... ^^



'말랑말랑 촉촉한' 사랑이야기, 정우와 한효주


영화 '쎄시봉'에서 젊은 민자영(한효주)와 젊은 오근태(정우)의 사랑이야기는 사실 70년대 풍경이다. 실제 가수 이장희씨가 1947년생이니까 울 엄마(1946년생)랑 한 살 차이다. 그러니까 민자영과 오근태의 러브라인은 내겐 부모세대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도 공감이 되는 이유는 뭘까?


개인PC나 휴대폰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세대의 사랑, 사람사는 이야기는 모두 아나로그라는 공감대가 있다. 함께 있다가도 헤어져 집에 들어가면 연락할 길이 없어 애가 타고, 창 밖에서 서성거리는 풍경이 닮아 있다. 물론 생각나면 바로 실시간 카톡을 날리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현재의 모습에 익숙한 지금에는 정우와 한효주의 사랑이야기는 아득한 옛날같다. 



영화 '쎄시봉'은 뮤즈 민자영을 둘러싼 알콩달콩 러브라인에서 자영과 근태의 사랑으로 주인공이 좁혀지다가, 영화배우의 꿈을 위해 자영이 어린 시절 첫사랑 교회오빠였던 영화감독과 결혼하기로 하면서 밋밋한 스토리에 큰 변화를 준다. 하지만 이 역시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옛날 멜로 영화의 전통적인 스토리 구성과 닮았다. 


하여튼 시련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특히 아나로그식 멜로 구성에서는 더더욱. 사랑을 잃은 근태는 군에 입대하고, 근태와 소식이 끊긴 송창식과 윤형주는 '쎄시봉 트리오'에서 근태를 뺀 듀엣 '트윈폴리오'로 가수로 데뷔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럼 군에 입대한 근태는? 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당연하던 시절 공안경찰에 끌려간 근태는 '대마초'를 피웠다는 진술을 강요받고, 근태의 친구들도 줄줄이 끌려와 뺨을 얻어맞으면서 신문에 기사가 실리는 화면이 나온다. 그렇게 이들의 20대와 음악감상실 쎄시봉이 문을 내리고.



20년 뒤에 알게 되는 사랑의 약속,  김희애와 김윤석


이장희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LA에서 레스토랑과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는데, 20년 뒤에 홀연히 그 앞에 나타난 민자영. 여기부터는 중년 민자영 김희애의 완숙한 연기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희와 자영. 문득 근태의 소식을 묻고, 자영이 옛날 대마초 사건 당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장면은 중년이 되어 더욱 애잔해지는 사랑의 복선. 


장희와 헤어져 자영은 라스베가스에서 길을 걷다가 '웨딩케익'의 원곡을 듣게 된다. 카메라는 흐린 모습으로 저 멀리에서 길거리 카페 의자에 앉아 대화를 하는 중년의 근태 김윤석의 모습이 잡힌다. 둘은 모두 후배를 데리고 이야기한다. 자영은 웨딩케익을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라고, 근태는 이 노래를 쎄시봉의 트윈폴리오와 함께 부를뻔 했던 시절이 있었다라고.



우연인지 모르지만 근태도 장희의 라디오에 출연하게 되고 둘은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근태는 장희에게 말한다.

"대마초 사건때 내가 친구들 이름을 다 불었다는 소문이 있지. 그거 다 사실이다."
"나는 니들 친구 아냐, 간다~"


자영은 후배와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 명은 장희 목소린데, 한 명은..."


정답은 라디오에서 장희가 그냥 알려준다. 쎄시봉 멤버, 트위폴리오와 함께 노래했던 남자 오근태라고. 자영은 장희의 라디오 방송국으로 달려가지만 방송은 녹음방송이었고, 장희는 세도나에 있다. 장희와 자영은 전화통화에서 근태가 캘리포니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참 진부한 러브스토리인데도 끌려드는 것은 장현성(이장희 역)과 김희애, 김윤석의 농익은 연기 덕분인가.


둘은 그렇게 엇갈리는 운명일까. 그럴리가 없지. 두 사람은 우연히 공항 흡연실에서 눈길이 마주치게 되고, 어색한 커피 한 잔을 하게 된다. 애틋한 눈길의 자영은 감독과 이혼해 혼자서 애들 키우며 산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근태는 어린 딸이 있다고 억지 대답을 한다. 자영은 결혼식 전날 집 앞에 '웨딩케익'을 놓고 간 사람이 '너(근태)'냐고 묻고, 근태는 군대 동기가 만들어준 케익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곤 두 사람은 각자의 비행기 편에 오르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장희에게 안부인사를 전하려 전화를 건 자영. 장희는 세도나에서 줄곧 근태가 자신에게 남겼던 말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다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마초 사건 시절 모두 끌려갔는데, 왜 신인여배우 자영은 아무 일이 없었을까. 


영화는 다시 그 시절을 보여준다. 근태는 수사관과 타협을 한다. 자영을 살려주는 대신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줬다. 그리고 군 부대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굵은 눈물을 흘린다. 자영에게는 한 기자가 거친 질문을 던진다. 대마초 수사 용의자에는 민자영 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왜 수사에서 빠졌느냐고 묻고, 자영은 거칠게 입에 물던 담배를 던지면서 자리를 떠버린다. 



순간 자영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대화.


"근태야, 너는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어?"
"나는 널 지켜줄게."

그랬다. 근태는 자영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의 이름을 수사관에게 줬다. 
그렇게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공중전화 수화기는 허공에 매달린채 자영은 근태를 배신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근태에게 달려간다. 항공편 탑승수속을 하던 근태에게 자영은 왜 그랬느냐는 너무 뻔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근태는 발길을 돌리고, 탑승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근태 역시 게이트 안에서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쓰러져 통곡한다. 김희애가 여성스럽게 훌쩍인다면, 김윤석은 상남자스럽게 눈물조차 뿜어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14년 서울에서 트윈폴리오가 공연을 하는 자리에서 근태와 자영은 눈이 마주치고, 장희는 근태를 데리고 윤형주, 송창식과 해후의 자리를 만든다.


영화 속 이장희는 말한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눈에는 스무살 시절의 모습 그대로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영화 쎄시봉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보는 나도 우습다. 내가 언제부터 멜로 영화를 봤다고. 우습다, 우스워.




/ 글=소장환(free5785@), 사진=영화 쎄시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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