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山島月明夜 上戍樓 撫大刀深愁時 何處一聲羌笛更添愁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있는 한산도가(閑山島歌) -
영화 '명량'(2014, 김한민)이 국내 영화관련 신기록을 죄다 갈아치우고 있다. 최단시간 천 만 관객 돌파부터, 영화 '아바타'(2009, 제임스 카메론)가 갖고 있던 최다관객 보유기록까지 바꿀 것 같다.
5천만 정도의 대한민국 인구에서 천만이 넘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봐도 이해를 하기 어려운 어린 친구들과 거동이 힘든 어르신들을 제외하고, 문화적 소비 인구 기준으로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영화 '명량'을 봤다는 이야기다.
이미 흥행에 성공한 영화 명량을 조금 뒤늦게 보면서, 런닝타임 128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자막이 나오는 순간에는 왠지 모를 약간의 허탈감이 밀려 왔다.
임진왜란 7년 전쟁 가운데 가장 스펙타클한 해전 '명량'
영화 '명량'의 가장 핵심적인 마케팅 포인트는 '역사가 기록한 가장 위대한 전쟁'이다. 우리도 홍보 카피는 이제 헐리우드급이다. 아니 헐리우드 안 부럽다.^^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당시 해전 23전 23승이라는 대기록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스펙타클한 부분이 명량해전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싸움이었으니까.
명량해전에 앞선 칠천량 해전에서 궤멸하다시피한 원균의 조선 수군이 겨우 살아남은 12척의 전함으로 330척의 일본 함대를 맞서 싸운다는 것은 정말 '임파서블'이다. 영화 속의 장수들도 "장군, 이 싸움은 불가합니다."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한산대첩(이순신) △진주대첩(김시민) △행주대첩(권율)을 꼽고, 세계 4대 해전에는 △살라미스 해전( BC 480년, 지중해의 도시국가 그리스와 동방의 대제국 페르시아 사이의 전쟁) △칼레 해전(1588년, 영국함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 △한산도 해전(1592년,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왜) 수군을 대파 △트라팔가르 해전(1805년, 영국 넬슨 제독과 프랑스 나팔레옹 연합군 사이의 해전)을 꼽는다.
우리나라나 외국의 역사가들은 임진왜란의 해전 가운데 '한산대첩'을 꼽는다. 그러나 감독의 눈에는 '명량'해전이 더 눈에 들어왔나보다.
왜일까?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개인사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치러낸 위대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의 서해 진출을 결정적으로 저지하여 7년 전쟁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한산대첩이 임진왜란 초기 해전의 승기를 잡은 것과 명량해전이 정유재란 초기 해전의 승기를 잡은 점에서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산대첩을 치를 때는 이순신 장군이 미리 준비한 막강한 조선 수군의 전력이 강성하게 있을 때고, '거북선'도 버티고 있었다. 반면 명량해전을 앞두고 있던 당시의 이순신 장군은 개인적으로는 고문과 백의종군으로 정신적 육체적 피폐한 상태였고, 외적으로는 칠천량에서 원균이 조선수군을 몰살시켜 달랑 12척의 전함이 겨우 남아 있었다. 거북선은 한 척도 없었다.
명량해전은 박해와 수난과 역경을 극복한 이순신 장군의 초인적인 존재감이 극대화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에, 아마도 감독의 눈에 상업적인 성공예감도 들었겠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전술을 보면서 길거리싸움을 상상하다?
약간은 발칙한 상상이겠지만, 싸움은 어쨌든 싸움이다. 어쩌면 극강 고수 조폭의 싸움실력도 병법에 닿아 있는지 모르겠고, 결국 병법도 극강 싸움 고수들의 머리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정확하진 않지만 어느 조폭영화에서 고수 두 명이 조직을 상대로 싸우면서 싸움 장소를 좁은 골목길로 선택했다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상대가 아무리 많아도 좁은 골목길에서는 2대 2 싸움의 연속이니까.
마찬가지 이유에서 이순신 장군 역시 명량해전을 앞두고 한 판 싸움 장소로 물길이 좁고 사나운 명량(울돌목)을 선택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른 때는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해보지 못했는데, 나이가 드니 성역없는 별 생각이 다 든다.^^
선조를 향해 "전하,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했던 이순신 장군께서 어떻게 330척을 상대하겠나. 넓은 바다에서는 그냥 포위될텐데. 그러나 좁은 울돌목에서는 가능하다. 명량해전에 임하면서 한 척이 늘어난 13척으로 일본 수군과 맞짱을 뜬다면 힘들어서 그렇지, 가능하다. 13대 13의 싸움이 계속되니까. 이미 일본 수군들 사이에서는 해전의 신(神)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순신 장군이라면 병사들의 사기가 높고 군수물자만 넉넉하다면 해볼만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여기에 조선 판옥선은 배의 밑면이 평평해서 화포를 싣고 쏠때 명중시킬 수 있는 정확도가 비교적 높고, 배의 180도 회전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구조다. 그러나 일본의 배는 밑면이 브이자(V) 형태여서 속도는 빠르지만 화포를 쏘기에 부적합하고, 회전을 하는 각이 크다.
여하튼 명량에서 맞짱을 떠서 백병전에 강한 왜군들의 함선이 판옥선에 달라 붙기전에 박살내면 된다.
실제 역사고증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은 그렇게 싸웠고, 수많은 왜군이 그렇게 고기밥이 됐다고 한다. 대장선이 이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조선 수군들이 용기를 내서 똑같이 싸워서 승리한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이 홀로 싸우면서 왜장 구루지마의 대장선과 맞붙어 왜선들에게 포위된 채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화포를 갑판 아래로 가져가 포문을 열고 근접해 붙어 있는 왜선들의 밑둥을 직사로 갈겨서 한꺼번에 침몰시키는 극적인 하일라이트를 만들었다.
이 순간에 이순신 장군은 부장에게 "된다고 말하게!"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눈에 띄는 인물 '준사'. 실제 일본배우 오타니 료헤이가 연기한 준사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역사 속 실존인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나름 인지도 있는 배우 노민우와 이정현은 생각보다 배역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 이정현은 말 못하는 벙어리 아내 '정씨'였고, 노민우은 구루지마가 데려온 조총 저격수 '하루'였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을 저격하려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거제현령 안위의 활을 눈에 맞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 약간 허망했지만, 한편으로는 배역에 거품이 없는 듯하기도 했다.
배신자 경상우수사 배설의 죽음 그리고 조선 수군 13척 전함의 '충파'
영화 구성상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르지만 영화 '명량'의 인물과 실제 역사 속 '명량 해전'은 다른 부분도 많긴 하다.
우선 경상우수사 배설의 죽음. 배설은 원균이 지휘하여 조선수군이 대패한 1597년 7월의 칠천량해전에서 12척의 배를 이끌고 도망쳤고, 이 배가 칠천량 패전의 한 달쯤 이후에 벌어진 명량해전의 주역이 됐다. 이 대목은 영화 '명량'의 첫 부분에서도 나온다. 배설은 작전회의를 하는 중에 이순신 장군을 향해 "통제공~" 하면서 작전이 뭐냐고 보챈다. 이에 안위가 눈꼬리에 힘을 주자 배설은 자신이 직속 상관이라면서 칠천량에서 자신이 12척의 배를 보전하지 않았다면 조선수군은 없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배설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거의 완성이 되어가는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탈영을 하게 된다. 특히 배설의 탈영에 앞서 일본 수군 장수 구루지마는 조선 수군 포로들의 머리를 베어 조선 수군진영으로 보내고, 그날 밤 겁에 질린 병사 하나가 도망치다 잡혀 온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할 말은 다 하였느냐" 묻고선 단 칼에 목을 베어버린다. 조금 뜬금없는 설정이지만, 배설의 도망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이리라. 하여튼 배설은 이 모습을 보면서 부장과 도망칠 궁리를 하고, 부장으로 하여금 닌자처럼 복장을 해서 잠든 이순신 장군을 해치려 시도하지만 아들 회가 나타나 실패한다. 밖에서는 거북선이 불타고 배설은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 노를 젓고 있다. 도망가는 배설은 자신의 변명을 늘어놓으려 한다. 그 순간 바다의 검은 하늘을 향해 배설의 뒤를 쫓던 거제현령 안위가 화살을 날리고, 몇마디 떠들던 안위의 가슴에 그대로 꽂힌다. 안위여 안녕~!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배설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에게 신병치료를 이유로 허락을 받아 육지로 나와 숨어버렸다.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배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고, 1599년 선산에서 권율장군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뒤 참수됐다.
해전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 실제 명량해전과 관련된 기록들에서는 영화 명량과 같은 해전 백병전은 없었다고 보여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선 수군은 화포와 원거리 활 공격을 통해 왜선의 접근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조총의 사거리보다 활의 비거리가 훨씬 길었다. 문제는 정확도와 파괴력인데, 조총은 직선으로 날아가기때문에 배 갑판위에서 은폐 엄폐가 가능했고, 사거리 밖에 있을 경우에는 파괴력도 약했다. 오히려 활의 비거리가 더 길고, 곡선으로 날아가기때문에 궁수들이 목표물을 향해 집중사격하여 탄착군을 형성하면 그 피해는 조총에 뒤지지 않았다.
실제 명량해전에서 백병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조선 수군의 피해를 보면 될 것 같다. 전투에 참여한 전선 13척, 초선(협선) 32척 가운데 단 1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군인은 전사 2명과 부상 2명이라고 돼있다. 단체로 칼들고 치고패고 싸웠다고 하기엔 인명손실이 적다.
다만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에서 명량해전 가운데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왜선에 둘러쌓여 백병전이 벌어지려 할 때 장군의 대장선이 도와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의 배에 오르지도 못하고 물에 빠져 죽은 셈이다.
영화 마지막에 가면 물길이 바뀌는 때를 맞춰 이순신 장군이 대장선에 초요기를 세우고, 그대로 돌격해서 조선 전함 13척이 왜선들을 들이 박아서 침몰시키는 '충파'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칠천량에서 모두 사라진 거북선을 판옥선에 대체시켜 등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관객들 마음속에 거북선이 없어서 아쉬울지 모르는 역사적 사실의 갈증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주는 셈이다. 영화 속 장면도 돌진하는 판옥선들 앞에 거북모양 선수가 없을 뿐 화포를 쏘면서 가는 모양은 그대로 거북선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배의 모양이 뾰족한 왜선들을 향해 표면적이 넓은 조선 판옥선이 들이 박는 것은 어찌 어색하다. 물론 조선 수군의 배를 만든 나무가 훨씬 튼튼한 목재일 수는 있겠지만...
하여튼 이 '충파' 작전은 현대 우리 해군이 아직도 쓰고 있다. 1999년 당시 서해에서 벌어진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의 참수리 고속정들이 NLL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 해군함정을 향해 들이받는 작전을 펼치는 모습을 뉴스 화면으로 생생하게 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해군이 '차단기동'이라고 부르는 이 모습이 진정 '충파'작전 이렸다.
엔딩자막 올라오는 순간 "잉, 이게 다야?"
해전씬이 끝나면서 이순신 장군과 아들 회의 잔잔한 대화로 영화는 마무리되고, 엔딩자막이 올라오는 데 "잉?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뭔가 부족해.
일단은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촘촘하지 못한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감독 스스로 쫄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영화 전반부에서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와 후반부에서 명량해전 전투씬으로 크게 나뉘는 영화의 전개상 비약적인 전개 또는 뜬끔없는 장면들이 종종 눈에 띈다.
너무 많은 장면을 찍어놓고, 런닝타임에 맞춰 편집해서 그런가?
아니면 혹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에서 그랬듯이 다음 편과 그 다음편, 또 그 다음편을 보면서 전편들과 이야기가 연결되는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시사평론가 진중권 교수는 이 영화 속에서 이순신 장군의 카리스마도 없고, 시대정신도 없다고 혹평을 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기자는 현 정치지도자들에게 실망한 국민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쉽'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영화 '명량'의 흥행을 만들었다는 일부의 설도 틀렸다고 진단한는 걸 읽었다. 또 어떤 이들은 영화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는 "영화는 영화"라는 점. 일단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 영화는 첫번째 중요한 요건이 '재미'다. 지금의 문화소비대중은 무엇보다 재미 없으면 외면한다. 재미라는 전제조건 범주 안에서 시대정신이나 역사적 고증이나 하는 부분을 기술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영화 제작자들의 몫이다. 소비자들이 그 부분까지 고민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는 그냥 선택만 할 뿐이다.
나는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면 또 볼 계획이다. 장르에 관계 없이.
/글=소장환(free5785@), 사진=영화 제작사 홍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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