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잠은 안 오고, 앨범을 뒤지다보니 오래된 사진이 보인다.
대학시절 풍물패 모습과 집회하던 사진들인데, 세월이 지나서 보니 새롭다.
언제, 누가, 이 사진들을 찍어서 내게 줬나 기억나지 않는다.
"응답하라 1992" "응답하라 1997" 나의 대학시절.
지금의 전북대 구정문이 내가 대학 입학했을 땐 정문이었다. 현재의 정문(신정문) 쪽은 뽕나무(?)가 잔뜩 심어진 곳이었다. 학군단 집합해서 기합 받던 곳...
구정문 앞에서 늘 집회를 시작했다.
3월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오고,
4월이 되면서 4.3 제주민중항쟁, 4.19 혁명, 5.18 광주민중항쟁, 5월 대동제, 6.10 민중항쟁을 거치면 여름방학이 다가왔지.
가을엔 법과대학 축제 '정연제'가 기다리고...
여름방학 내내 형사모의재판을 준비했던 기억도 난다.
처음엔 피고인 1로 출연했던 나,
군대에서는 3군사령부 군사모의재판을 연출하고,
복학해서 형사모의재판 총연출을 했었던 기억들...
그렇게 대학 다니던 1997년 어느 날...
군산에서 연락이 왔다.
휴대폰이 없이 삐삐와 시티폰(?)이 있던 당시.
총학생회에서는 법대 학생회로 다급하게 연락을 하고,
부모님이 나를 찾는 삐삐도 열심히 울렸던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집으로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이유는?
식당을 했던 부모님이 오전에 문을 열고 있는데,
검정색 봉고차 두 대가 집 앞에 멈추고는
짙은 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루루 내려서
"OOO 어디 있냐?"고 찾았다지.
"우리 아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왜 찾냐?"
"당신들 누구냐?"
밥 숟가락을 놓고,
잔뜩 긴장해서 전투태세를 취했을 아버지, 어머니.
전북대학생을 전주가 아닌 군산으로 잡으러 오다니...
그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줬다.
'안기부(국정원)'와 '서울경찰청 대공분실'이라고...
뭔 첩보영화도 아니고..
하지만, 결국 나는 그들을 본 적이 없다.
총학생회에서 들은 소식은 느닷없이 '수배중'이라는 것.
"내가 왜??? 도대체 뭐땀시???"
우습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잡고 싶은 '전북학생연대' 대표가 사회학과에 다니던 후배였는데, 그 친구가 나랑 많이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학내 좌경 폭력시위를 주도하는 좌파 학생들의 배후 세력으로 '나'를 의심했다는 것. 그래서 나를 잡고 있으면 전북학생연대 대표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음... 나를 잡으면 그 후배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은 70%는 맞다. 수배 중에도 나랑 술 마셨으니까. ㅋㅋㅋ)
어이가 없지.
나는 그 녀석이랑 술 마신 죄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코미디지만, 그땐 그랬다.
내 덕분에 나랑 친한 법대 학우들 고생했지.
성학이 형, 기태, 재경이...
읽던 책 감추고, 걸리면 안될 것 같은 문건들 태우고...
그런데 나의 수배기간은 길지 않았다.
한 달도 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유는 그 후배가 익산에서 자수했다.
그리고 나를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밥 사주고, 고기 사주던 정보과 형사는 열받아했다. 그 후배가 익산에서 자수하는 바람에 자신의 실적이 날아가버려서.ㅋㅋㅋ 나랑 같이 있으면 그 후배를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있다는 기대를 했을 것인데.
하여간 그 후배는 그때 감옥에 가서 옥살이를 했다. 나는 연애편지 쓰듯이 줄구장창 편지도 써주곤 했다. 그리고 내가 고시공부하러 서울 신림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 친구는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노동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 술마시면서 자주 붙어다녔던 이유는 간단했다. 전북대 노조에서 법적인 싸움을 해야되는데, 변호사를 쓰자니 돈도 비싸고 누가 도와주려는 변호사도 없었다. 그래서 법대 학생회로 SOS가 왔고, '의리파'였던 나는 짐을 싸서 노조에서 그 친구와 함께 먹고 자면서 노조를 도왔다.
당시 합동강당(지금은 사라짐) 한 구석에 자리잡은 노조 사무실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전기장판 깔고 자면서 새벽 한기를 이겨내곤 했다. 저녁마다 냄비에 찌개를 끓여서 찬 밥 한 덩이를 말아서 소주 대병(빅 사이즈) 한 병씩을 비워내야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라는 한 계절을 보내고, 어느 봄 날 노조를 쫓아내려 기습한 대학 수위아저씨들 한 무리에게 팔과 다리를 붙들린채 공중으로 들려서 쫓겨났다.
사진 속에 있는 노조 형님들과 아주머니들은 모두 기성회직이나 일용직이었다. 내가 이십대 시절에 사십대 이상이었으니, 이제는 60대 이상이 되셨겠다. 다들 잘 지내시겠지.
/글. 사진=꿈꾸는 달팽이(free5785@)
'끄적거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재인 대통령ᆢ 대한민국 희망을 찾는다 (0) | 2017.05.19 |
---|---|
가을 108번뇌ᆢ (0) | 2016.10.25 |
풀꽃 인연ᆢ (0) | 2016.05.15 |
잔인한 4월, 세월호 참사 2주기ᆢ (2) | 2016.04.16 |
삼천 로드킬ᆢ 족제비의 죽음을 보며ᆢ (0) | 2016.03.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