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⑧ 집안(集安)의 추억, "진정구"
고구려 유적지 지안(集安·집안)에서의 '하룻밤'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 단둥(丹东·단동)에서 지린성(吉林省·길림성) 지안(集安·집안)까지 버스 타고 장장 6시간. 요동대학에서 세미나를 마친 다음 점심을 먹고 출발한 버스는 캄캄해진 지안현에 도착했다. 참고로 서울과 1시간 시차가 있는 만주 벌판에서는 오후 4시를 넘어가면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우리 시간으로 오후 5시, 그리고 북쪽인 탓에 해가 더 빨리 지는 것 같다.
버스의 좁은 좌석에 몸을 구기고 바이주(白酒)의 기운을 빌어 잠이 들었지만, 꿈 속에서도 계속 점심에 먹은 음식들이 눈 앞에 아른 거린다.
어두워진 지안 시내에 들어선 버스의 창밖은 어둠이 내려 앉았다. 긴 하품을 하면서 장시간 가슴 속에 갇혀 있던 알콜 숨을 밖으로 꺼내 놓고, 창가에 얼굴을 부비대면서 풍경을 둘러본다. 영락없는 시골 읍내 풍경같다. 그래서 정감이 더 간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우리는 버스에 내려서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먹고 나서 다시 먹는 일을 반복하는 셈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또 먹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뜨거운 논쟁의 주제이면서 보편타당한 논제(?)를 바탕으로 볼 때, 인간이란 존재는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일단은 내 경우에 참 잘 먹는다.
"나는 잘 먹는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인간은 잘 먹는다."
식당입구에서 바라 본 식당가 모습. 마치 시골 읍내에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모습처럼 정감이 간다.
저녁 먹고, 따로 또 먹는 집안의 '샤브샤브'…'진정구(金针菇)'의 추억
단둥에서 설레는 첫날 밤을 보낸 답사팀은 자연스럽게 YB와 OB로 나뉘었다. 예전엔 어딜가나 분명히 '막내'급이었던 난데, 여기에서는 OB가 됐다. 그거 참... 그래도 뭐, 혼자는 아니다.
하여튼 저녁을 든든히 먹고서 만주의 긴 밤을 방안에서 홀로 보내기 두려운 OB가 모였다. 첫날 저녁부터 눈빛만 마주쳐도 뭉쳐지는 홍일표 보좌관과 나, 그리고 차가진 전문위원. 셋이서 답사 일정의 세트인 셈이다.
세 명은 다르면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인천 남구갑 지역구 재선 국회의원이신 홍일표님이 아닌 보좌관 홍일표님은 연배가 연년생인 동시대적 공감대가 강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올해 둘째를 출산한 애 엄마 차가진 전문위원은 머니투데이 기자 출신이고, 홍일표 보좌관도 참여연대를 거쳐 한겨레에서 밥을 먹던 파워풀하고 화려한 경력들이 있다. 그럼 나는? 가난한 지방대 고시실패 인생 출신이고, 딸 둘을 키우는 아빠다. 지방신문에서 잠시 일하다가,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어서 뒤늦게 여의도생활에 입성한 국회사무처 비정규직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어쨌든간에 정치바람 앞에 파리 목숨 같은(?) '어공'의 공통점이 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자연스럽게 로비에 모인 세명 세트는 한팀을 만들기 위해 눈을 돌렸다. 골프 캐디피를 나눌 것도 아닌데, 반드시 4명 한 팀을 이루려는 습성이 참 놀랍다. 그렇다고 내가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닌데. 간접경험이 더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멤버를 즉석에서 영입했다. 국회사무처 정규직 '늘공(늘 공무원)' 서기영 서기관. 아담한 키에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 그런데 화나면 성질이 장난 아닐 것 같은 매력이 감도는 그녀다. 사실 우리가 그녀를 선택한 것은 후에 '통키 오빠'라고 불리게 된 '연변의 다혈질' 최○○ 조사관을 구출할 의도도 있었다. 직장 문밖에 나와서도 상사 곁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쉴까봐. 세속적 표현대로 "퇴근하면 공장얘기는 뚝"이다.
하여튼 얼떨결에 2대2 성비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한 팀이 구성됐다. 그렇다고 어디 멀리 갈 수도 없었다. 왠지 단둥에 비해 치안문제도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길도 모르고, 결정적으로 언어도 바디랭귀지뿐이지 않은가.
우리의 선택은 호텔 문앞 길 건너 훠궈(火锅·huǒ guō) 가게. 그러니까, '샤브샤브' 집이다. 당차게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했다. 옛 고구려땅, 지금은 중국인 이 곳에서 이제 둘째 날이지 않은가.
"여기요~" 역시 다 알아듣는다. 단둥의 꼬치구이집처럼 실내포장마차 같은 구조 분위기. 여기는 다 비슷비슷한 구조인 모양이다. 그래도 이 집은 칸막이도 있다. 카운터에는 '따거'(大哥·dàgē)가 지키고 있고, 주문은 아줌마가 받는다. 우리 네명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멀뚱멀뚱... 그리고 역시나 주문은 홍 보좌관 몫이다.
"량그어 삐쥐어~"
여기까지는 알아듣겠다. 안주거리는 아줌마가 뭐라뭐라 추천한다. 그리고 낯익은 단어가 들렸다.
"진정구(金针菇·jinzhengu)"
오잉~! 이게 무슨 소리지. 그렇다, 국회사무처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님이 '진정구'님이시다. 1964년 경남하동 출생이신 차관보급 고위 공직자의 이름이 이 만주땅에서는 이곳저곳에서 난무했다. 이 분은 정말 크게 되실 분이 아닌가 싶다. 이 넓은 대륙에서 13억 인구가 이름을 불러주는데, 크게 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이 블로그 포스팅이 믿기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은 지금이라도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진정구' 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을 못차리고 급흥분상태에 빠지면서 즐거워하는 한 분이 있었다. 나름대로 미모의 서기영 서기관.
"엄훠나, 우리 수석님. 지금까지 만난 상사 가운데 가장 멋있고, 완벽하신 분"
직장 문 밖에 나와서도 입에 거품을 물고 침튀겨가면서 아부성 발언을 남발한다. 우리는 아무도 그 말을 전달해주지 않을 건데 말이다. 아마도 운 좋으면 진정구 수석께서 이 글을 검색한다면 모를까. 안타깝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한가지 더 폭로해놓자면, 서기영 서기관이 '진정구'를 가장 많이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원해서 우리는 '진정구'를 추가 주문도 했다. 이 날은 맥주보다 '진정구'라고 불리는 팽이버섯을 무척이나 즐겁게, 많이 먹었다.(메롱~)
사실 이런 폭로는 항상 객관적 팩트(fact)에 입각해야 한다. 그리고 증거가 필요하다. 그날 자리는 서기영 서기관이 튀긴 침이 몽땅 내 얼굴에 묻었으며, 맞은 편에는 머니투데이와 한겨레 출신의 증인이 버티고 있었다. 물론 증거 사진도 있다. 이렇게...
<계속>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①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② 단동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④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⑤ 북-중 국경이 맞닿은 땅 '황금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⑦ 고구려 혼(魂)을 만나러 가는 길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⑨ 고구려(高句麗) 광개토태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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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소장환(free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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