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⑦ 고구려 혼(魂)을 만나러 가는 길
랴오닝성 단둥에서 지린성 지안까지, 6시간 버스 '대이동'
인천공항에서 쎈양으로, 쎈양에서 단둥으로, 다시 단둥에서 지안으로, 계속 이동했다.(사진=구글어스 캡쳐)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 단둥(丹东·단동)에서 지린성(吉林省·길림성) 지안(集安·집안)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장장 6시간. 요동대학에서 세미나를 마친다음 점심을 먹고 출발한 버스는 캄캄해진 지안현에 도착했다.
좌석이 좁은 버스를 타고 6시간 이동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이 과정을 견디는 약은 술이다.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중국의 독한 바이주(白酒)를 연거푸 마셨다. 다행히 이 비법은 터득하고 있는 또 한 사람, 홍일표 보좌관이 있었기에 우리는 함께 마셔댔다.
잠을 자다가 눈을 떠도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요녕성과 길림성의 경계가 되는 혼강(渾江)을 사이에 두고 놓인 혼강구대교를 건너기 전, 간이화장실을 들르기 위해 길가에 잠시 멈췄을 뿐이다.
(위) 혼강구대교를 건너기 전에 있는 간이 화장실의 모습이 나무뿌리 등걸처럼 특이하다. 화장실은 좌우로 남녀 칸만 구분이 되어 있을 뿐, 문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위) 랴오닝성 단둥시와 지린성 지안현의 경계를 알리는 안내판. (아래) 현지주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혼강구대교를 건너는 모습.
사학자들은 압록강의 지류인 이 혼강을 고구려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비류수(沸流水)로 추정한다. 이 추정이 맞다면 주몽설화에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비류수 강가에서 채소가 흘러내려오는 것을 보고 강 상류에 따라가 비류국의 왕 송양(松讓)과 활쏘기를 겨루어 졸본과 비류를 비로소 하나가 되게 하였다는 이야기의 무대인 셈이다.
우리 일행이 고구려의 혼(魂)을 만나기 위해 장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목표점인 지안현을 사학계에서는 고구려의 국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집안현의 시내 한가운데 국내성터가 남아 있고, 인근에 광개토태왕비와 태왕릉, 장군총, 환도산성 등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 정부도 이 곳을 중국 역사에서 지방정권인 고구려의 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현재 사학계와 중국정부가 고구려의 유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내용.(출처=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는 고구려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재야 사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까지 이런 주장을 모두 틀렸다고 지적한다. 현대에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 이전부터 중국의 한(漢)족들은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우리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주장을 한다.특히 국내 사서에서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안시는 곧 환도”라 했으며, 같은 <삼국사기>에도 “안시성은 옛 안촌홀이며 환도성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즉 중국은 환도성을 국내성으로 보았는데, 우리는 환도성을 안시성이라고 기록했다.(참고 : 고구려 환도성·국내성은 중국 내륙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는 안시성이 곧 환도성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안시성은 당태종이 성주 양만춘으로부터 활을 맞고 애꾸가 되었다는 곳이다. 그럼 중국과 사학계에서 말하는 안시성의 위치를 찾아서 지도에 표시해보면 그 오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중국은 물론 사학계에서 안시성의 위치를 추정하기를 하이쳉(海城·해성)에서 동남쪽으로 7.5km 떨어져 있는 둘레 약 4㎞의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이라고 한다.(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런데 국내성과 환도성이 있다는 지안과 '환도성=안시성'이라는 안시성이 있다는 하이쳉은 지도상에서 직선거리로만 약 250㎞ 이상 떨어져 있다. 정설로 여기는 사학계의 주장은 이렇게 단순한 비교만으로도 고구려 국내성 또는 환도성의 위치가 확 달라지는 오류를 안고 있다.
인터넷 지도에서 안시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성(화살표의 왼쪽)과 국내성과 환도성이 있다는 집안(화살표의 오른쪽)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사진=구글어스 캡쳐)
그렇다면 이 위치는 또 맞는 것일까. 사학계 일부에서는 당나라 30만 대군과 두 차례나 '고당전쟁' 대회전을 치른 안시성에는 10만 명에 달하는 군사와 성민이 있었다는데, 하이쳉에 있는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은 그 규모를 볼 때 10만 명이 머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영성자산성이 진짜 안시성일까라는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럼 어디일까. 중국은 물론 동북아 동양 사학계에서 정서로 꼽는 사서인 한서(漢書)와 위서(魏書) 등에서는 안시성의 위치를 '하북성 북경 일대'라고 표현하고 있고, 환단고기에는 "하북성 개평의 동북쪽 70리"라고 적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인 박지원도 '열하일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당서>를 보면 안시성은 평양에서 500리요, 봉황성은 왕검성이라고도 한다고 썼고 <지지(地志)>에는 봉황성을 ‘평양’이라고도 한다 하였으나 이러고 보면 무엇을 표준 삼아 이름을 붙였는지 모를 일이다. 또 <지지>에는, 옛날 안시성은 개평현의 동북 70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고, 개평현으로부터 동으로 수암하까지 300리요, 수암하로부터 동으로 200리를 가면 봉황성이라고 했으니, 이것으로써 옛 평양이라 한다면 <당서>에서 말한 평양과 안시성의 거리가 약 500리쯤 된다는 것이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현재 중국과 사학계에서 안시성으로 추정하는 하이쳉은 랴오닝성내에서 쎈양의 남서쪽에 있다. 그러나 중국의 사서와 열하일기 등으로 비춰보면 베이징(北京·북경) 인근 허베이(河北·하북)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안시성의 위치는 지안과는 정말 멀어지게 된다.
인터넷 지도에서 국내성과 환도성 유적지라는 집안과 안시성(=환도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해성, 그리고 중국 사서 옛 문헌에 안시성이 있었던 곳으로 기록된 하북 북경일대를 비교한 모습.(사진=구글 어스 캡쳐)
더 나아가 최근 사학계에서는 고구려 벽화의 기록들로 볼때 고구려에 속했던 유주가 지금 베이징의 근처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 일부 재야 사학계에서는 국내성이나 환도성의 위치, 그리고 유주의 위치도 중국 대륙 내부 황하의 지류인 '분하' 일대라는 주장을 중국 고서를 바탕으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고대 역사의 진위를 천년도 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중국의 '동북공정'은 그들의 상술과 만나 우리에게 왜곡된 역사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학교교육과정에서 역사 교육이 사라진 우리에게는 정말 세월이 흐른 뒤에는 '동북공정'이 정설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우리 조상들이 경영했던 땅이 사학계에서 위서(僞書)라고 하는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것처럼 대륙 전체에 미쳤다면 정말 좋겠다.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다음날 고구려의 혼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까지 설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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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소장환(free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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