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⑬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2014년 11월의 기억을 해를 바꿔가면서 두 달여가 지났다. 역시나 메모의 힘이 중요하다. 메모 해둔 것이 아니면 기억용량이 부족한 나의 메모리는 포맷될 판이다.^^ 하여튼 다시 2014년 11월의 그 날로 또르르~.
환도산성(丸都山城)이라는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을 둘러보고, 압록강변에서 북한 만포시를 잠시 바라 본 뒤에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역시나 독한 중국 바이주(白酒)를 반주삼아 먹어줬다. 왜? 장장 6시간 버스 이동을 위한 나름의 노하우다.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 단둥(丹东·단동)에서 지린성(吉林省·길림성) 지안(集安·집안), 그리고 다시 송강하(松江河)로. 여기 송강하에서 밤을 보내면 백두산(白頭山)에 오른다. 백두산의 정기를 받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공수해간 토마토팩을 얼굴에 붙이고 일찍 곤한 몸을 뉘었다. 어차피 주변이 나갈 곳도 없는 것 같았다. (이날 밤 최통기 조사관이 방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팩 붙인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YB들이 노는 방이 맞은 편인데, 헷갈렸던 것이었다!)
백두산 오를 땐 '지프'를 타고 간다
아침에 눈을 떠 가방을 끌고 호텔을 이리저리 돌아도 똑같이 생긴 모양이 미로찾기 같았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아침식사는 포기해야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백두산 북파를 향해 갔다. 해발 2750m의 백두산. 학창시절엔 최고 높이가 2744m라고 배웠고, 달달 외웠는데. 다시 측량을 해서 현재는 2750m(장군봉)가 백두산의 공식 해발고도라는 것 같다. 우리에겐 백두산, 중국에서는 창바이 산(長白山·장백산)이다. 6.25전쟁 이후에 북한과 중국이 국경협상을 하면서 백두산의 일부는 내어줬다는데, 이제는 중국이 조금씩 조금씩 들어와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백두산 산문에 도착한 뒤에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지프를 타고 정상까지 간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백두산을 난개발했다고 해야할지, 나처럼 산을 잘 못타는 인간들을 위한 배려라고 해야할지...
어쨌든 장백산(長白山)이라고 씌여진 산 입구에 도착하면 티케팅을 해야 한다. 셔틀버스 티켓, 지프 티켓, 백두산 입장료 등등. 가격은 "그때 그때 달라요~"인 듯 하다.
티켓팅을 하고 난 뒤에는 조선족 안내인을 따라 셔틀버스에 올랐다. 백두산부터는 백두산과 연변지역 전문 남자안내인으로 교체됐다. 말투도 확연히 다르다. 북한 함경도 말씨라고 했다.
메뚜기가 연상되는 셔틀버스를 타고 산 중턱쯤에서 다시 지프로 바꿔탔다. 이 순간부터는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오금을 저려가면서 올라가야 된다. 지프가 눈 내린 산길을 오를 수록 나무도 점점 사라지고, 높이가 높아지면서 귀 고막도 잠시 막막해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는 안전 바도 있는 둥 마는 둥 콘크리트 도로. 지그재그로 난 산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지프에 생명을 걸고 갔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20분 정도는 말 없이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창 밖에 굴러떨어진 사고의 흔적이 있다느니, 길가에 위령비가 있다느니 하는 소리에는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그냥 어서 빨리 정상이 나오기만 기도했다.
드디어 정상! 허리가 아프다. 너무 힘을 줬나보다. 산 정상에 산장에 있고, 또 다른 산장이 공사 중이었다. 지프들이 넓은 공간에 도열해 다시 내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 메뚜기가 생각나는 셔틀버스의 모습. (아래) 백두산 정상까지 타고 올라 갈 지프.
(위) 지프가 출발하면 창 밖으로 눈 덮이 도로와 울창한 숲이 보인다. 그러나 해발고도가 높아지면 숲이 없어지고, 황량한 고원지대의 모습 위로 뱀처럼 구불구불한 콘크리트 도로만 나타난다. (아래) 정상에 도착하면 다시 내려갈 손님을 태우기 위해 지프들이 모여 대기한다.
백두산 천지(天池)는 말 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백두산 정상은 영하 20도. 호흡은 그대로 찬 서리가 되어 가라앉고, 폐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다. 한마디로 엄청 춥다.
그래도 한 걸음씩 옮기면서 천지(天池)의 곁으로 다가갔다. 천지는 그 곳에서 수 천 년동안 말 없이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백두산을 오르는 자는 많지만, 천지를 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금방금방 변하는 날씨 탓에 깨끗한 천지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서는 6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족 안내인의 말이다. 우리는 덕을 쌓은 조상들의 후손인가보다. 다 같이 천지를 봤으니까.
늘 자료사진으로만 봤던 천지를 마주대하는 순간, 호흡이 멎을 것 같았다.
"여기가 천지구나. 여기가 백두산이구나."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백두산 천지를 보게 되니 참 운이 좋구나 싶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의 기운을 가슴에 품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남긴 인증 사진.
백두산을 내려가는 방법은 올라왔던 방법을 역순으로 하면 된다. 다만 타고 갈 지프는 바뀐다.^^
올라올 때는 제법 온순한 사람이 모는 지프를 탔다. 천천히 올라와줬다. 그런데 내려갈 때는 오두방정이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혼자 신나게 운전을 한다. 노래마저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중국어로 부르는 노래다. 맙소사! 비트있고, 빠른 리듬의 노래에 맞춰 운전을 하겠다고? 그것도 백두산 내리막길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냥 눈과 귀를 막았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왠걸? 올라왔던 시간에 비해 빨리 내려왔다. 하여튼 다행이다. 일행들이 모두 내려오자 우리는 다음 코스인 장백폭포를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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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소장환(free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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