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⑤ 북-중 국경이 맞닿은 땅 '황금평'
북중경협 '일교양도(一橋兩島)'…단둥 개발사업에 SK도 참여
현재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일교양도(一橋兩島)라는 말로 표현된다. 일교는 신압록강대교를 말하고, 양도는 북한의 영토인 위화도와 황금평 두 개의 섬을 뜻한다. 그만큼 북중경제협력의 상징이라는 의미인 듯 싶다.
(위) 황금평과 위화도의 개발계획에 관한 그래픽. 한국일보에서 인용했으나, 위화도의 위치가 틀렸다. 위화도의 위치를 틀리게 그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아래) 신압록강대교가 건설된 자리 옆에 있는 섬은 '유초도'이고, 위화도는 그 위쪽에 있다. 위화도(12.2㎢)의 면적이 황금평(11.54㎢)보다 조금 더 넓다.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우리 정부가 2010년 5.24 조치를 발표하면서 북한이 경제협력파트너쉽의 대상을 대한민국 대신 중국으로 돌리면서 매우 긴밀해졌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8년 6월 16일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 회장의 '소떼 방북' 이후 금강산 관강이 시작되고, 참여정부 들어서는 2000년 개성공단이 가동되면서 조만간 통일이라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햇볕정책'이 '북한 퍼주기'가 되면서 상황은 다시 변했다. 여기에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에 이어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면서 파국을 맞이했다.
이후 북한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는 매우 높아져 5.24조치 이전에 40% 수준이었던 대중국 의존도는 현재 90% 수준이다.
하여튼 5.24 조치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차를 이용해 중국을 방문해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중국 지도부를 만나 S.O.S를 했다. 그리고 중국은 자신들이 성공했던 상하이 경제개발구의 성공경험을 살려 '점-선-면'으로 이어지는 요녕연해경제개발구(요녕개발구)
계획을 이미 완성했다. 그 계획 안에서 북중접경지대 가운데 압록강 유역에서는 단둥-신의주, 두만강 유역에서는 나진-선봉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그리고 압록강 유역에서 단둥-신의주 개발을 위한 첫 단추로 황금평과 위화도의 개발계획이 시작됐던 것이다. 중국의 북중경협의 최종목표는 평양까지 이어지는 북중경협의 확장이고, 북한경제의 대중국 종속화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4년 현재 단둥신구는 중국의 주도하에 상당히 개발이 진행됐고, 이 개발사업에는 SK네트웍스도 참여하고 있다. 다만 북한은 그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과정에서 외부경제협력 사업이 사실상 멈췄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북한내 중국통으로 알려진 장성택이 처형되는 내부사정과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UN차원에서의 대북제재에 참여하면서 중국이 북한으로 원유를 공급하던 송유관을 폐쇄하는 등 '내우외환'이 겹친 북중관계가 악화된 것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위)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모습. 중국은 황금평 가까이에 길이 3㎞에 이르는 사장교를 건설했다. 약 3,000억원이 넘는 건설비용도 중국이 모두 부담했다. (가운데) 신압록강대교의 중국측 세관의 모습. 모든 공사를 끝내고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아래)구글어스에서 확인한 신압록강대교의 모습. 중국측과 달리 북한측 부분은 교량과 도로의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고, 연결을 위한 공사에 들어간 흔적도 없다. 북중관계의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도 신압록강대교의 개통은 당분간 물리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 맞닿은 '황금평'
신의주에서부터 떠오르는 북방대륙의 일출을 본 감흥을 느끼면서 아침을 챙겨먹고선 다시 버스에 올라 황금평으로 달렸다. 요동대학에서의 세미나를 가기에 앞서 황금평을 둘러보려면 서둘러야 했다.
황금평에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북중 공동관리사무소가 있는 입구에 도착해보니 철문은 굳게 닫혔있다. 눈 앞에 저만치에는 아직 공사중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이외에는 아직 진척된 황금평 개발의 모습은 잘 모르겠다. 다만 임강택 박사의 설명은 이 곳이 북중 국경이 맞닿아 있는 가장 가까운 지역이라는 것. 경제개발특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국경선을 지키는 군인은 안 보인다.
(위) 황금평 경제개발구로 들어가는 입구의 안내 입간판. (아래) 입구의 모습. 뒤에 공사중인 북중공동사무소의 공사현장. 현재는 북중관계의 악화로 공사의 진척이 없는 듯 하다.
(위) 황금평 개발구 입구 옆으로 난 국경선 철책. (아래) 압록강의 퇴적으로 황금평의 땅이 중국과 맞붙어져 가장 가까운 국경의 모습.
황금평. 벼와 옥수수 수확이 끝난 들판은 이름처럼 누런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북중경협의 상징인 황금평은 여전히 북한주민들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는 땅이었다. 원래부터도 황금평을 개발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땅 전체가 퇴적층의 연약지반이고, 지대가 낮아 대규모 홍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홍수때 위화도가 잠기고, 황금평도 대부분 물 속으로 들어가버렸었다.
따라서 황금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홍수를 대비하기 위한 방수제를 쌓아야하고, 기업들이 공장을 짓거나 하기 위해서는 연약지반을 극복하기 위한 파일을 촘촘히 심어야 하는 등 이래저래 투자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이런 단점을 가진 땅이지만 국경에 접한 넓은 땅이기에 국경무역에 적합한 개발이 가능한 장점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곳을 개발하고, 내부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투자한 재정능력이 없는데, 이런 북한을 달래면서 단둥에 연결된 연장선상에서 개발할 수 있다는 이유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도 나름 의미가 있는 땅인 것 같다. 다만 2010년 이후 최근 3년 동안 이 곳에 기업을 유치한 실적은 '0'이다.
서둘러 황금평을 둘러 본 우리는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요동대학으로 향했다. 세미나를 위해서...
<계속>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①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② 단동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④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⑥ 대북전단 '삐라'와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⑦ 고구려 혼(魂)을 만나러 가는 길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⑧ 집안(集安)의 추억, "진정구"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⑨ 고구려(高句麗) 광개토태왕비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⑩ 광개토태왕과 '태왕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⑫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고구려 동천왕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⑬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⑭ 백두산 비룡폭포와 온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⑮ '훈춘'에서 나진-하산을 바라보며
/ 글.사진=소장환(free5785@)
'발길닿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려 혼(魂)을 만나러 가는 길 (0) | 2014.11.28 |
---|---|
대북전단 '삐라'와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 (0) | 2014.11.25 |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0) | 2014.11.20 |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0) | 2014.11.19 |
단둥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0) | 2014.11.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