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⑭ 백두산 비룡폭포와 온천
백두산 천지를 둘러보고 내려 온 일행은 버스를 타고 장백폭포(長白瀑布)를 향했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이름은 비룡폭포(飛龍瀑布).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듯 웅장한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을텐데. 이제는 백두산 보다 장백산, 비룡폭포보다는 장백폭포다. 통일이 되어서 우리 땅에서 백두산을 갈 수 있다면 다시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찾아 올 수 있으련만.
동해바다가 '조선해'라는 이름을 잃고, '일본해'가 된 것을 우리는 '동해'라는 의미없는 이름으로 만드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장백산으로 널리 알려진 백두산의 이름을 되찾아 오는 것이 나중에는 참 힘들수도 있겠다.
비룡폭포 가는 길목에서 백두산 온천 달걀을 맛보다
주차장에서 내려 비룡폭포를 향해 걷는 길만 30~40분 걸리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보이는 협곡 저 편에 폭포가 있다는 말에 무작정 걸었다. 백두산에서 천지와 폭포를 빼놓고 달리 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싶은 생각때문이었다.
일행들도 이제는 풀어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OB와 YB그룹이 나뉘어져 서로들 많이 친해졌다. 여행은 추억과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폭포를 향해가는 길목에 백두산 온천수로 삶은 계란을 만날 수 있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에서는 증기가 뿌옇게 올라오는 모습만 보면 흡사 극한지대에 와 있는 것 같다. 반숙처럼 익은 계란이 딱히 맛으로 평가할 수는 없고, 백두산 온천으로 익힌 계란이기에 한 입 먹어볼 뿐이다. 그리고, 팁! 폭포까지 가는 길에 이 곳을 빼면 화장실은 없다. 꼭 볼 일을 봐주고 가는 센스~! 그래야 산행이 가볍다.
길을 따라, 앞 사람을 따라 걷고 걷는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계곡의 증기를 뚫고 가파른 길을 계단따라 올라 간다. 길 옆으로는 하얀 눈이 허벅지까지 올라 올 것 같다. 젊은 청춘들은 눈 속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즐거운 표정들이다.
아, 5년만 일찍 왔어도 내 모습이 저랬을텐데라는 상상이 머리에 가득했다. 하얀 눈을 보면서 계속 걷다가 한 고개를 넘어 굽이 돌아내려가면 비룡폭포다. 주변은 나무 숲과 하얀 눈만 보일 뿐이다. 순간 여기에서는 호랑이랑 곰이 살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게도.
비룡폭포 앞에서 '1박2일'을 떠올리다
눈 앞에 비룡폭포가 보였다. 하얀 눈 속에 파묻힌 용이 힘겨운 숨을 토해내면서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산 중턱에 걸린 태양만이 용에게 기운을 내려주고 있을 뿐.
나는 그 앞에서 용이 토해버린 호흡들을 다시 들이마시면서 하늘을 봤다. 그래, 백 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용은 저렇게 날아오르고 있었을 거야. 힘 내라, 대한(大韓)!
비룡폭포 옆으로는 긴 터널처럼 이어진 산문이 있다. 저 길을 따라 2시간 정도 올라가면 천지 물가에 다다를 수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TV에서 봤으니까. 예전에 '1박2일'에서 강호동과 이승기 일행이 저 곳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오르고, 한라산에서 떠간 물과 합수(合水)라는 장면을 봤었다. 그 때가 2008년, 나는 2014년 11월에 그 곳에 왔다. 하지만 그 곳을 가 볼 수는 없었다.
2008년 당시 '1박2일' 방송 직후 산사태로 폐쇄됐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중국정부가 상당히 불쾌했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었다. 백두산은 중국 동북공정의 정점에 있는 핵심 아젠다이기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북파에서 백두산 천지 물가로 가는 길이 이렇게 막혔다.
(위) 하얗게 뒤덮힌 겨울 비룡폭포의 모습. 11월 초순이지만, 백두산 일대는 이미 하얀 겨울의 한 가운데 있었다. (중간)(아래) 비룡폭포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다.
백두산에서 목욕을 하면 '선인(仙人)'이 될 수 있을까
백두산 천지와 비룡폭포를 둘러 본 다음에는 온천 목욕을 할 수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온천장이었다. 빙글빙글 철제계단을 따라 5층 정도를 올라가야 온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장 높은 층에 욕실을 만든 건, 노천탕 개념으로 밖을 볼 수 있는 노출탕(?)때문인가보다.
탕에 앉아 있으면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을 맞으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겠다. 예전에 일본 삿포로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호텔 온천탕인데 천정이 뚫려 있었고, 하얀 눈이 탕 위로 내리는 모습이 참 신기했었는데.
탕의 구조는 남탕과 여탕이 나란히 붙어서 얇은 가벽형태 구조물만 있을 뿐이어서 떠드는 소리가 다 들렸다. 어차피 이날 온천에는 우리 일행만 있었다. 마음 먹고 눈 뭉치를 집어던졌다. 즐거운 비명소리가 화답한다.
이렇게 백두산 온천수를 뒤집어 쓰면, 이대로 백두산 선인(仙人)이 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살아오면서 쌓였던 군더더기들을 모조리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백두산에서의 하루 일정은 온천과 함께 마무리 됐다. 이제 다음날 예정된 '훈춘' 방문이 대장정의 마지막이다.
<계속>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①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② 단동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④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⑤ 북-중 국경이 맞닿은 땅 '황금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⑦ 고구려 혼(魂)을 만나러 가는 길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⑧ 집안(集安)의 추억, "진정구"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⑨ 고구려(高句麗) 광개토태왕비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⑩ 광개토태왕과 '태왕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⑪ 동북아의 피라미드 '장군총'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⑬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⑮ '훈춘'에서 나진-하산을 바라보며
/ 글.사진=소장환(free5785@)
'발길닿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추석 군산 이야기... (0) | 2015.09.27 |
---|---|
'훈춘'에서 나진-하산을 바라보며 (2) | 2015.01.28 |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0) | 2015.01.23 |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고구려 동천왕 (0) | 2015.01.04 |
동북아의 피라미드 '장군총' (0) | 2014.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