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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닿는곳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고구려 동천왕

by 사랑화니 2015.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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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⑫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고구려 동천왕


2014년 11월에 다녀왔던 북중접경지역 답사. 어느덧 2개월 전의 기억이 됐고, 그 사이에 해가 바뀌어 2015년이 됐다. 소중한 경험의 기억들이 점점 조각조각 희미한 시간의 편린(片鱗)으로 변해 페이드아웃(Fade out) 되는 것이 저어되어서 끄적거리기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횟수가 늘어나니 조금은 부담도 된다.

이 블로그의 시작과 끝은 나와의 약속에 불과하고, 누가 지켜보지는 않지만 흐지부지 하다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인가. 하여튼 답사기에 대한 포스팅을 다 마치면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

하여튼 답사 일정의 세 번째 날인, 2014년 11월 5일의 지린성(吉林省·길림성) 지안(集安·輯安·집안)으로 돌아가 11편 동북아의 피라미드 '장군총'에 이어서 가보자.


장군총에서 환도산성(丸都山城)으로

답사팀은 장군총에서 이동해 환도산성(丸都山城)을 향했다. 버스를 타고 장군총에서 빠져나와 환도산성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고구려 제국의 수도였다는 국내성의 규모가 왠지 너무 작은 것 같다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조선족 고교 교사인 안내인은 환도산성을 "주몽의 아들인 유리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쌓은 성"이라고 설명했다. 평시에는 국내성에서 정치를 하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환도산성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싸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강단 사학계에서도 환도산성은 서기 3년(유리태왕 22년)에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함께 전시를 대비해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환도산성은 위나암성(尉那巖城)으로도 불린다. 현재 중국 정부와 우리나라 강단 사학계는 여기 지린성 지안에 있는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 그러니까 우리가 버스를 타고 찾아가고 있는 곳을 환도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여간 그곳이 환도산성이라 하니,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달렸다. 얼마 달리지 않아 우리는 다시 내렸다. 어느 산골짜기 무너져내린 산성의 모습. 내 눈에 들어 온 환도산성이다.

(위) 첫 시야에 들어 온 산성의 모습. (아래) 환도산성임을 알려주는 표석.


환도산성. 과연 이 곳이 중국의 수만, 수십만 대군과 맞서 싸우던 성의 모습인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알 수는 없겠지만, 의아스럽다. 수천, 아니 수백 명만 모여도 던지는 돌맹이를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보이는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문을 걸고 싸운다는 건지.

학교에서 배운 역사책에서는 서기 244년 무렵에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국내성과 환도성을 점령하고, 동천왕이 옥저로 도망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가끔 역사 시험문제에도 나왔던 내용이다.

환도산성을 다녀 온 이야기를 포스팅하면서 관구검의 고구려 침공에 대한 내용을 다시 읽어봤다.

고구려가 서안평을 공격하자 위나라는 유주자사인 관구검으로 하여금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게 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동천왕이 철갑기병을 포함한 2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맞섰다. 비류수와 양맥 골짜기에서 각각 위나라 군사 3천명의 목을 베었다고 했다. 그러나 방심한 동천왕이 관구검에 패해 수도 국내성을 버리고 도주했다고 했다. 이때 관구검은 자신의 전공을 기념하는 비문을 새겼다고 한다.

이해가 안된다. 1만명의 적군을 처음 두 번의 전투에서 3천명씩 6천명의 목을 베었다면 남은 적군은 4천명. 게다가 전투를 치르고 패한 군사들이기에 상당 수가 부상병이었을 것인데, 이들에게 고구려 2만의 군사가 패했다니... 설사 고구려 군사도 전사했다고 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숫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질 이유가 없는데.

더구나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1만명의 군사가 출정했다면 긴 보급로를 고려할 때 3~4천명의 군사는 엄청난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일을 했을 것이고, 결국 전투병은 6~7천명일 것이다. 그럼 뭐지? 왜 진거지? 여기에 대해 재야 사학계에서는 중국의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여간 '환도산성'이라고 불리워지는 산성자산성을 둘러봤다.

(위) 무너진 산성자산성을 중국정부가 복원하기 위해 조금씩 다시 쌓고 있다. (아래) 성에 있는 우물. 전쟁을 위한 산성의 성문 앞에 개울이 흐르고, 우물도 있는 것은 조금 의아스럽다.

(위) 촘촘하게 쌓여진 산성의 성벽 아래를 조금은 걸어볼 수도 있다. (아래) 낮은 산 능선을 따라 산성의 흔적이 있고, 다시 성을 복원하고 있다.

산성자산성의 앞쪽으로는 통구하(通溝河)가 해자처럼 흐르고, 성과 통구하 사이 들판에는 오래된 고분군들이 모여 있다. 국내성을 방어하는 전시용 환도산성이 맞다면 전쟁을 위한 성 앞에 귀족과 공주 등의 신성한 무덤을 만들었을까 싶다. 그 지역은 전쟁이 벌어지면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하는 공간이기때문이다.

의구심의 환도산성을 둘러보고,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점심장소로 이동했다. 그 곳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만포시가 보이는 곳이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 만포시…'벌등섬' 개발을 위한 북중합작  

버스에 내려 압록강가에 섰다. 강 건너는 북한 만포시. 눈에 들어 온 북한 만포는 한적한 시골동네 모습이었다. 산 꼭대기 위에 높은 굴뚝이 솟아 있는 것을 보면서 장항제련소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중국 국경과 마주보이는 곳에 보이는 집들은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까. 시골풍경같은 집들 앞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비포장된 도로위를 연기를 잔뜩 피우는 자동차가 달려간다.

처음에 매연이 많은 차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자료를 보니 '목탄차'인 모양이다. 목탄차는 말 그대로 나무를 불에 때면서 그 동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인데, 해방이전에 있던 차량이라고 한다. 최근 북한의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 다시 등장했다는 것 같다.


(위) 골짜기에 아늑해 보이는 곳에 집들이 늘어서 있고, 집 앞에는 붉은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연기를 내뿜는 트럭(목탄차)이 달리고 있다. (아래) 산꼭대기에는 높은 굴뚝이 솟아 있는 모습이 어릴 적 군산 금강하구에서 보던 장항제련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포스팅을 하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 곳은 대규모 수력발전소인 장자강발전소(연하리)와 중소형 수력발전소인 송학발전소, 송하발전소, 등공1호발전소, 등공2호발전소 등 곳곳에 발전소가 있는 북한 전력생산기지다.

특히 장자강발전소는 1959년에 만들어진 북한 최초의 지하발전소다. 6.25 전쟁 직후에 압록강변에 지하발전소를 만들 정도라면 당시엔 북한의 경제력이 상당했던 것 같다.

이 발전소는 1990년 무렵에 대규모 보수공사를 벌여 발전능력을 9만 킬로와트까지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만포시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전력을 바탕으로 공업이 발달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기계공업(만포림업기계공장, 만포정미기계공장, 만포재봉기공장, 만포어린이자전거공장, 만포기계수리공장, 만포농기구공장), 건재공업(만포세멘트공장, 만포건재공장), 화학공업(만포화학공장, 만포가성소다공장), 식료품공업, 경공업 등이 있고 만포목재가구생산협동조합, 만포악기공장, 만포일용품생산협동조합, 만포가내생산협동조합 등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단둥시에서 봤던 황금평이나 위화도처럼 북중합작을 통한 개발이 진행되는 섬이 있었다. '벌등섬'이다.

중국 지안과 북한 만포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그 사이에 압록강 퇴적으로 발달한 '벌등섬'이 있다.(사진=구글어스 캡쳐한 위성사진)


최근 북한과 중국은 '벌등섬'을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 벌등섬의 면적은 25㏊, 환산하면 약 76,000평이다. 중국은 지안의 고구려문화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뒤 여기와 접목한 관광개발특구로 벌등섬을 개발할 목적을 갖고 있고, 북한은 외화벌이가 그 이유다.


2012년 북중 사이에 황금평 위화도 개발을 합의할 당시 함께 개발하기로 합의했는데, 공동 개발 협의는 2011년부터 있었다. 당시 우리의 시장격인 만포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이 중국 지안을 방문해 지안시정부에게 벌등섬에 북한 식당과 토산물 판매점을 짓고 북한 예술단체 공연도 하며, 벌등섬을 유람선으로 잇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중국 지안시는 2014년까지 10억 위안(약 1,773억원)을 투자해 벌등섬에 다리와 관광시설을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안을 방문한 방문한 2014년 11월 5일 현재까지 이뤄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우선 지방정부에 막대한 투자재원이 없는 것 같고, 따라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최근 북중간의 불편한 정치적 관계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하여튼 북한 만포시를 앞에 두고 인증샷은 남겼다.



<계속>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①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② 단동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④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⑤ 북-중 국경이 맞닿은 땅 '황금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⑦ 고구려 혼(魂)을 만나러 가는 길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⑧ 집안(集安)의 추억, "진정구"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⑨ 고구려(高句麗) 광개토태왕비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⑩ 광개토태왕과 '태왕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⑪ 동북아의 피라미드 '장군총'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⑭ 백두산 비룡폭포와 온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⑮ '훈춘'에서 나진-하산을 바라보며


/ 글.사진=소장환(free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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