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⑥ 대북전단 '삐라'와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
대북전단 '삐라'는 과연 남북관계에 중요한 요소일까?
황금평을 둘러보고 신압록강대교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본 우리 북중접경지역답사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요동대학으로 향했다. 요동대학에서 세미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조선족 동포인 요녕대학 장동명 교수와 요동대학 만해봉 교수, 순수 중국 한족으로 대북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가 장강씨 등 북중 관계와 한중관계에 나름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우선 세미나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이 분들과 전날 '신안동각' 저녁 자리에서 이미 인사를 나눴던 이야기를 먼저 풀어야 할 것 같다. 전날 저녁 자리에서 나눴던 대화가 오히려 조금은 더 솔직담백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전날 압록강단교를 둘러 본 우리 일행은 '신안동각'에서 저녁시간을 가졌다. 버스에서 내려 식사장소에 들어가니 다음날 세미나를 함께 하게 될 이 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임강택 박사의 지인들이다. 대단한 인적 네트워크에 잠시 놀라움을 가지면서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장동명 교수가 함께 했다.
신안동각의 입구 모습. 큰 건물의 모습이 한 컷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큰 빌딩 자체가 음식점의 규모다.
식사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루 동안 북중접경지역을 둘러 본 소감이 화제거리가 됐다. 그러면서 어쨌든 통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장동명 교수는 김정은 지도체제 이후 변화를 겪고 있는 북한 사회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이 개혁개방의 과정을 겪으면서 걸어 온 길을 북한은 더욱 압축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장동명 교수는 2014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위대한 변혁의 년(年)"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중요하다고 했다.
궁금했다. 김일성-김정일 선대와 달리 김정은은 전후세대이고, 해외 유학파다. 나름대로 자본주의 국가들을 둘러 본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과연 '대북전단'이 남북관계 정상화의 진짜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군생활 경험에 비춰보자면, 20여년 전 서부전선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북한에서 날아 온 '대남전단' 삐라를 많이 봤다. 삐라에 적힌 사진이나, 자극적인 문구를 보면서 오히려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대북전단이 북한으로 날아간다고 해서, 날아간다면 평양까지 얼마나 날아가는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북한 주민들에게 심리적 동요나 체제불안을 야기시키는 직접 원인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에서 싫다는 걸 자꾸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특히 박상학씨와 같은 일부 탈북 반체제 인사들의 경우 정치적 의도를 갖고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주민들이나 다른 탈북자들의 신변안전 등에 있어서 악영향을 주는 동시에 휴전선 인근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들마저도 불안하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 몇 사람이 날려보내는 대북전단때문에 김정은 지도체제가 흔들릴만큼 북한 정권의 기반이 취약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신뢰관계(信義)이고, 진정성(眞意)인 것 같다.
질의 서면에 익숙한 자여, 말문을 열지 말지어다
우리 일행은 요동학원(遼東學院·요동대학)에 도착해 세미나 장소로 향했다. 중국은 대륙의 땅 넓이 규모가 큰 때문인지 대학의 규모도 장난 아니게 크다. 이 곳에서 대학(大學)은 우리의 '대학교(University)' 개념이고, 학원(學院)은 '대학(college)'의 개념이라고 한다.
세미나 주제는 '북·중 관계의 발전 가능성과 남·북·중 3각 협력방안'에 대한 것이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강택 박사의 사회로 △발표 1 : 시진핑 체제 하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특징과 남·북·중 3각 협력에 대한 시사점(만해봉·요동학원 조선반도연구중심 주임교수), △발표 2 : 새로운 시대 북한경제정책과 중국·한반도의 경제무역협력 발전 전망(장동명·요녕대학 교수), △발표 3 : 북·중 경제협력 현황 및 남·북·중 협력방안(김갑식·툥일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이어졌다.(이 분들의 주제발표 내용은 블로그 포스팅에서는 과감히 생략~)
약 2시간 정도의 주제발표와 토론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몰입했다. 진지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그만 질문을 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 당나라 시대 또는 청조시대와 같은 동북아, 세계 정세에서 미국과 함께 G2로 꼽히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는 최강국가 G1이 되기 위한 중요한 전략 포인트로 한반도 정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고구려와 발해 시대 이후 잃어버린 땅 대륙으로 진출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영토확장의 문제였지만, 현재는 경제영역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마치 신당(新唐)시대와 같습니다.
만해봉 교수께서 말씀하신 신의주-한국-일본 신칸센으로 이어지는 물류이동의 구상은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개성공단을 추진했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개성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티켓팅할 수 있다는 꿈을 이야기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을 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교류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5.24조치 이후에 남북간의 경제교류가 없습니다.
중국학자가 바라 본 한반도 정세에서 '통일'을 위한 중요한 선결과제를 3가지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블로그에 이렇게 정리해서 포스팅을 하면 그래도 말이 조금은 되는 것도 같다. 하지만 현장에서 질문을 할 때는 왜 그랬는지 긴장된 떨리는 목소리와 나 스스로 말이 길어지고 있다는 조바심이 겹치면서 말이 꼬이고, 엉망이 되고 말았다.
아, 역시 서면으로 정리해서 보고하는 일상에 익숙해진 내게 있어서 구두로 질문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전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할 때는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꺼내고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공식' 자리가 되고 보니 완전 엉망이다.
그런데 함께 자리 한 홍일표 보좌관은 내 뒤에서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콕 찔러서 질의를 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역시 핵심 요지를 콕콕 찍어낸다. 부럽다. 나보다 앞서서 질문을 던진 박현규 보좌관은 나보다 더 길게 말했지만, 품위 있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대 출신이다. 그동안 학벌 갖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 순간만큼은 이 인간들이 부럽다. 게다가 그 뒤에 질문하는 국회사무처 정무위원회 서기영 과장도 질문을 잘한다. 그것도 내 옆에 앉아서. 그래서 다짐했다. 다음 세미나때는 입을 꾹 다물고 공부만 해야지.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다.^^
만해봉 교수의 주제발표 과정에서 소개한 PPT 자료.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장동명 교수.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선결문제는 "신의"
남북에 모두 정통한 중국학자들이 바라 본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선결문제는 무엇일까.
장동명 교수는 대통령이 대답할 문제라면서 웃어넘겼지만, 말끝에 '진실한 민심'을 꼽았다. 아마도 정권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통일을 바라는 진실한 믿음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만해봉 교수는 협력의 기본 전제로 '신의'를 꼽았다. 남과 북이 서로 신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만해봉 교수도 신의를 바탕으로 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속>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①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② 단동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④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⑤ 북-중 국경이 맞닿은 땅 '황금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⑧ 집안(集安)의 추억, "진정구"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⑨ 고구려(高句麗) 광개토태왕비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⑩ 광개토태왕과 '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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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⑫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고구려 동천왕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⑬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⑭ 백두산 비룡폭포와 온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⑮ '훈춘'에서 나진-하산을 바라보며
/ 글.사진=소장환(free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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