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압록강 사이 섬에 사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관광상품화한 중국인들의 '상술'
조선왕조 탄생의 역사가 시작된 위화도(威化島)를 지나 압록강을
따라 버스는 계속 달렸다. 그리고 지명을 알 수 없는 곳, 그 어느 곳에 멈췄다. 조선족(중국교포라는 말도 있지만, 이 곳에서는 중국내 소수민족으로서 조선족이라는 말이 더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안내인은 일행들에게 지금부터 둘러보는 곳에 대한 인터넷 블로그 포스팅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자세한 위치가 알려지게 되면 북한 당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해 힘들게 개발한 관광포스트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걱정도 팔자다. 정확한 위치를 블로그 포스팅을 하라고 해도 뭘 알아야 하지. 무작정 달린 버스가 멈춘 곳에서 내리라니까 내리고, 이 곳으로 오라고 하면 따라갔을 뿐인걸.
우리가 당도한 곳은 압록강의 지류를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북한 지역을 가깝게 둘러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조선족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6.25전쟁 이후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과 북한 김일성 주석이 만나 중국과 북한의 국경협정을 맺으면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되, 섬은 북한의 소유(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극히 몇 개의 섬은 제외)로 하고, 지류를 포함한 강의 이용은 공동으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 땅에 상륙하지만 않는다면 배를 타고 지류를 따라 다니면서 북한의 섬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전혀 불법적이지 않다. 국내법적으로 강의 지류는 북한과 중국의 공동소유개념이기때문에 우리 일행은 배에서 내리지 않는 한 중국내 영역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우리 일행이 탔던 배와 동일한 유람선. 유람선 선착장까지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중국인들은 이미 일반적으로 이 배를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북한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광경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중국인들의 상술이 놀랍기도 하다. 북한주민들이 마치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중국의 젊은 남녀들은 모터보트를 타고 왔다갔다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안내인을 따라 유치원 학생들처럼 졸졸 따라가 유람선에 올라타고 강을 따라 갔다. 북한 섬 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마치 60~70년대 기록영화나 근대 사진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양새같았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소를 끌고와 물을 먹이고, 강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그리고 배추 같은 푸성귀를 다듬는 군인들까지.
우리 일행이 탄 유람선이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자 어떤 주민은 함께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다혈질의 젊은 군인이 주먹질을 하면서 욕지거리를 하기도 했다.
강가에 보이는 가옥들은 옛날 시골에서 보던 집들의 모양새다. 가까운 곳에서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는 것은 만감이 교차하게 했다. 어차피 이 곳은 북한에서도 시골, 깡촌에 가까울 정도의 변두리 시골일테니 우리의 시골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북한도 평양에는 고층빌딩들이 있을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데,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이 이 곳에서는 더 납득이 안됐다. 더구나 이 곳에서 세 부류의 한국인을 느꼈다.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에서 온 우리 일행,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한반도 북쪽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주민들, 또 한 부류는 우리와 같은 말을 사용하고 똑같은 민족이지만 중국인인 '조선족'이다. 그러고보니 일제 침략의 결과가 제2차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남북 분단만 가져 온 것이 아니라 만주일대까지 삼국분단을 만들었구나.
하여튼 이 상황에서 또 놀라운 것은 중국인들의 상술이다. 이 묘한 상황을 이용해 북한 주민들의 삶조차도 동물원 원숭이 관람하듯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버리다니. 정말 가깝게 북한주민들을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슬프디 슬픈 현실이었다.
섬 강가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가옥. 예전 어릴 적 시골에서 보던 집들과 비슷하다.
강가에 소를 끌고 나와 다듬던 채소들을 담아 실어 나르는 북한 주민들.
배에서 우리 일행이 손을 흔들자 한 주민이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 가슴에 붉은 뱃지가 보인다.
강 기슭에서 그물을 거두고 있는 어부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북한 주민의 모습.
고기를 잡는 배인지 용도는 잘 모르겠으나 강 곳곳에서 보이는 배의 모습.
강을 따라 한 바퀴 돈 유람선이 다시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길에 배에서 안내하는 중국인 선원은 북한 돈을 내민다. 북한 땅을 쳐다보고 있으니, 기념으로 북한 돈도 사라는 것이다. 북한 돈 천원을 우리 돈 천원으로. 환율로 따지면 무척이나 비싼 셈이다. 더욱이 북한이 화폐개혁을 했기때문에 아무런 소용도 없는 돈이란걸 알면서도 북한 지폐 한 장을 천원에 샀다. 북한 지폐를 받아들고서 느낀 것은 질이 제법 괜찮다는 것이다. 미국 100달러를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북한의 화폐기술이니 잘 만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북한 중앙은행이 발행한 천원 지폐. 북한 지폐의 질도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6·25전쟁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철교…어둠에 갇힌 강 건너 '신의주'
(위) 압록강단교와 조중우의교가 나란히 있는 모습. 압록강단교의 북측 다리는 교량은 교각만 남고, 6.25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모두 파괴됐다. (아래) 압록강단교 매표소 입구 모습. 중국은 우리에게 슬픈 역사를 관광상품화했다.
(위) 압록강 단교 위에 전시된 6.25전쟁 당시 사용 무기. (아래) 6.25전쟁에 참전하는 중공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For Peace'.
압록강 단교의 폭격 맞은 부분 모습.
압록강단교 위에서 찍은 단둥과 신의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화려한 불빛의 단둥시내(오른쪽)와 어둠뿐인 신의주(왼쪽)가 대조적이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⑥ 대북전단 '삐라'와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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