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② 단둥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압록강 사이에 두고 1시간 시차, "해가 뜨고지는 자연의 시간은 똑같은데"
우리 일행을 태운 이층버스는 단둥(丹东·단동)을 향해 달렸다. 조선족 안내인은 중국에서 버스이동 4시간은 '기본'에 속하는 일이라고 엄포부터 놓았다. 그래 까짓거 자면 되는 일. 서울과 전주를 오가는 주말부부로, 그것도 로또 당첨보다 어려울 뿐 아니라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40대 주말부부 생활 3년차 아니더냐, 버스에서 자는 습관 하나는 자신 있는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 리무진 우등버스와는 사정이 판이하게 다른 중국 버스의 좁디 좁은 실내 좌석이 약간 문제일뿐.
단둥으로 향하는 길에 차창밖으로 보이는 고구려 봉황산성(오골성)이 있는 산의 모습. 중국의 동북공정이 강화된 이후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고,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안타깝게만 들렸다.
고층건물이 들어서서 잘 발달한 단둥의 시내모습. 단둥은 압록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도시가 발달하고, 남북으로는 도심의 길이가 짧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단둥과 신의주는 마주하고 있다. 강 건너 편 가깝게 보이는 곳이 북한 신의주인데, 서로 1시간의 시차가 있다. 끊어진 압록강 철교의 중간쯤에 가면 휴대폰의 자동로밍이 북한쪽의 신호를 잡지 못해 표시가 안되는 경우 있다.
고려의 슬픔이 있는 심양(瀋陽·쎈양)에서부터 230㎞를 달려와 압록강 앞에 다다랐다. 요녕성(遼寧省·랴오닝성) 남쪽 끝자락 도시 단둥(丹東·丹东·단동)이다. 그 맞은 편은 한반도 서북단 끝자락 도시 신의주다.
물빛이 오리의 머리색과 같다고하여 오랜 세월 압록강(鴨綠江·Yalu river)으로 불리우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내가 발딛고 있는 땅의 건너 편은 신의주, 북한땅이다. 이리도 가깝게 보이는 땅인가 싶어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운데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보다 1시간이 늦는 시차.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보면 로밍 시간이 분명히 1시간 시차를 표시해주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저 강 건너 기슭까지 자동차로 5분도 안 걸릴텐데, 시차가 있다니. 설사 우리가 출발한 인천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인천에서 단둥까지 약 370㎞ 거리를 고속도로로 달린다고 가정하면 시속 110㎞ 크루즈 성능으로 곧게 달릴 경우 3시간 20분정도면 주파할 수 있는 지척이다. 하지만 북경을 기준시로 하는 중국과 동경을 기준으로 하는 한반도는 1시간의 시차가 엄연히 존재한다.
인터넷포털 다음(Daum)에서 검색한 중국 단둥과 북한의 표준시 기준 시차 표시화면 캡쳐.
아마도 시간의 굴레만큼은 남과북 모두 여전히 일제시대인 것 같다. 참 웃기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사람들이 만든 시간의 질서는 똑같은 장소에서 1시간의 차이를 만들어냈지만,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시간만큼은 강을 사이에 둔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가 똑같다.
고구려땅에 당(唐)이 세운 '안동도호부'…조선왕조 탄생 역사가 시작된 '위화도'
심양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 고려의 슬픔이 서린 땅이었다면 압록강을 마주한 단둥과 신의주는 조선왕조 탄생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땅이다.
단둥의 지명은 1965년 이전까지는 안둥(安東·안동)이라고 불리었는데,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뒤 당(唐)나라가 고구려의 영토를 지배하기 위해 평양에 설치했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신라 문무왕에게 쫓겨 만주 요녕성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단둥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음식점의 이름이 안동각(安東閣)이었고, 현재는 신안동각(新安東閣)이 생겼다.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어 단둥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단둥은 도시의 모습이 압록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발달했다. 그리고 북한 신의주와 단둥 사이에는 압록강 모래가 쌓여서 옛부터 발달한 섬 '위화도(威化島)'가 있다. 위화도는 조선 태조가 고려의 막강한 군벌 장군이었던 시절 우왕의 요동정벌 명령을 받고 5만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였다가, 이 곳 위화도에서 전격적으로 회군하면서 조선 탄생 역사의 서막이 시작된 땅이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압록강변을 따라 달리면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위화도가 보였다. 626년전 조선 태조는 창 밖으로 보이는 저 곳에 고려의 5만 군대를 이끌고 와서 군영을 세우고 주둔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이 곳 단둥지역을 바라봤을 것 같다.
만약 그 때 조선 태조가 회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단둥이 우리 땅이 됐을까? 아니면 그 반대로 한반도가 다 중국이 됐을까? 하여튼 조선태조 역시 복잡한 심경이 들었을 것이고, 결국 태조는 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은 옳지 않다(以小逆大) ②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夏月發兵) ③ 온 나라의 병사를 동원해 원정을 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타서 침범할 염려가 있다(擧國遠征, 倭乘其虛) ④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이므로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시달릴 염려가 있다(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는 네가지 이유를 들어 회군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강 건너 건물들이 위화도에 들어 선 건물들이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위장건물이고, 건물 뒤 편에 보이는 60년대식 지붕의 집들이 위화도 북한주민들의 집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둔 단둥과 신의주, 그리고 그 사이의 위화도까지 오랜 옛날 우리 역사의 현장들이다. 창 밖의 풍경들을 보면서 책에서 배웠던 역사적 사실들이 머릿 속을 뱅뱅 돌았다.
고구려와 발해, 고려를 거치면서 조선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던 이 곳 간도와 만주벌판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면서 우리 역사의 무대에서 중국의 무대로 넘어가게 됐으니,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중국은 옛날 수·당 시대처럼 강성해져 21세기에는 미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군사 질서를 장악한 사실상 'G2'라고 해야할 정도다. 우리는 아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상태에서 여전히 분단국가에 머물고 있다. 다만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대국 열손가락에 가끔씩 들어가는 나라가 됐으니, 우리 스스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특히나 전후 세대인 내게 있어서, 아주 잠깐이지만 한중수교 이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중국을 앞서면서 교류를 했던 적이 있었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이제는 아니다. 동북아 역사에서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조선 시대 이후로 그런 역사적 경험은 다시 하기 힘들 것이다.
북한 역시도 6.25전쟁 직후 60년대 70년대까지는 경제사정이 괜찮았고, 중국 연변지역 주민들이 오히려 북한 국경을 넘었다는 말도 있다. 하여튼 다 지난 이야기고, 지금의 중국은 세계 강대국이고, 북한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활동무대가 지금은 중국 땅이다.
<계속>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①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④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⑤ 북-중 국경이 맞닿은 땅 '황금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⑥ 대북전단 '삐라'와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⑦ 고구려 혼(魂)을 만나러 가는 길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⑧ 집안(集安)의 추억, "진정구"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⑨ 고구려(高句麗) 광개토태왕비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⑩ 광개토태왕과 '태왕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⑪ 동북아의 피라미드 '장군총'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⑫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고구려 동천왕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⑬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⑭ 백두산 비룡폭포와 온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⑮ '훈춘'에서 나진-하산을 바라보며
/ 글.사진=소장환(free5785@)
'발길닿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0) | 2014.11.20 |
---|---|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0) | 2014.11.19 |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0) | 2014.11.12 |
여름날의 추억...:: (0) | 2014.08.18 |
고창 석정 휴스파~ (2) | 2014.08.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