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길닿는곳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by 사랑화니 2014. 11. 12.
728x90
SMALL

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11월에 오른 백두산 북파의 정상에서 만난 천지는 그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고요할 뿐이다. <주인 백>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① 잃어버린 북방영토에 들어서다


프롤로그…북중접경지역 탐사, 특별한 '동행'

어느덧 2014년 한 해도 시간의 강 기슭을 따라 저만치 떠나가고 있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3년 동안 국회라는 곳에서 특별한 일들을 겪었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할 수만 있다면 그 기억들을 모두 디스크에 저장하고 싶다. 하지만 적당히 잊어가면서 사는 것도 세상 사는 법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경험한 특별한 '동행'만큼은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 압록강 하류의 단둥에서 백두산을 거쳐 두만강 하류의 훈춘까지, 휴전선 길이의 3배 정도 된다는 북중접경지역을 아무때나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백두산 북파 정상에 올랐을 때 기온은 영하 12도,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 처럼 느껴졌다. 그 곳에서 만난 백두산 '천지'는 장관이었다.

백두산 정상은 누구나 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현지 안내인은 6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여튼 '천지'는 수천 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 고요하게 있었다.

동해바다를 1.5㎞ 앞에 두고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에 막힌 중국의 땅 두만강 훈춘에서는 북중러의 국경선이 맞닿은 지점,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통일연구원과 함께 떠난 북중접경지역 탐사는 정말 특별한 '동행'이었다. 그 기억들이 희미해지기 전에 몇 자라도 끄적거려보자.


통과할 수 없는 북한 하늘, 인천에서 중국 쎈양까지 황해를 돌아서 날다

11월 3일 월요일 아침 6시. 인천공항은 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시골뜨기처럼 주변을 둘레둘레 쳐다보면서 약속된 장소를 찾아 여행캐리어를 끌고 움직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팔을 잡는다.

김기식 의원실 홍일표 보좌관이다. 평소 혼자 생각에 코트가 멋지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인사를 나눈 뒤로는 멋있는 대구 남자라는 것도 알게 됐다.

서울대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공부한 수재인데다, 참여연대에서도 활동했던 그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뒤로는 소소한 일상도 가끔은 보게 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한 번도 함께 술을 마셔보거나, 사는 이야기들을 나눠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 동행길에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가게 될 유일한 지인(知人)이다. 물론 탐사 일정동안 함께 독한 중국 술들을 병째 비워가면서 그래도 제법 가까워졌다. 혼자만의 생각일지 몰라도...

이래저래 출국수속을 마치고, 아내가 부탁한 화장품을 면세점에서 챙긴 뒤에 탑승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면서 보니 창 밖으로 커다란 비행기가 보인다. 대한항공의 보잉747-400. 이 시골뜨기가 타고 갈 비행기다.

보딩패스를 손에 들고 다시 한 번 쳐다보면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늘 느끼는 약간의 공포를 스스로 눌러본다.

그렇게 얼굴에 촌티 안내려 노력하면서 탑승게이트에 들어서서 긴 브릿지 통로를 따라 걸었다.


좌석에 앉아서 옆자리 동행인과 인사를 나눴다. 통일연구원 송영훈 박사. 잠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는 서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몽땅 일에 대한 것이다. 이런 직업병들 같으니...

그 사이에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활주로에 접어들고, 달리기 시작한다. 활주로의 둔탁함이 몸에 그대로 전해져 오다가 순간 둔탁함이 사라지면서 창밖의 사물들이 작아진다.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사실 이륙하는 순간 우리는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기도했다.

위를 향해 한참 동안 솟구친 비행기가 잠시 평형자세를 잡더니 머리 위의 벨트 사인이 꺼진다. 우리는 다시 대화를 나눴다. 승무원들도 분주히 움직인다. 앞에서부터 기내식이 돌고 있다. 기내식과 콜라 한 잔을 받아들고선 인증샷을 찍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시네요."
"아, 네. 뭐, 그냥."

비행기 처음 타는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도 촌스러움의 극치라고 생각됐지만, 어쩌랴. 재미있는 걸. 머릿 속으로는 블로그 포스팅을 생각하면서 어떤 사진을 올리고, 무슨 말을 쓸까 생각하고 있다. 이 또한 일종의 직업병인걸까?

하여튼 어쩔 수 없는 어색함에 말 없이 기내식을 서둘러 먹고는 말을 걸기 위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 어쩌랴,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행과 친해지기 위한 행위의식으로서의 대화였던 것을. 하지만 함께 앉게 된 인연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나중에는 점점 생각이 비슷함을 느꼈고, 친근함을 갖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여튼 어색한 대화 속에서 비행기는 하늘을 날았고, 좌석에 붙은 모니터를 통해 보니 시속 733km의 속도로 약 8.4km 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어오는 맞바람이 시속 94km라니, 지상에서 같으면 내 몸이 저멀리 튕겨져서 날아가버렸겠다.

모니터에 비행항로에 대한 정보도 표시됐다. 우리는 북한하늘을 통과할 수 없기에, 인천공항을 이륙해 황해바다를 날아서 중국 산둥반도 웨이하이를 스치듯 다시 보하이만 앞에서 랴오닝 다롄을 지나 쎈양공항을 향했다.

날씨는 맑았고, 비행기는 쎈양공항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꺼졌던 휴대폰을 켜니 자동로밍이 되면서 중국과 한국 시간이 나뉘어 표시된다.


고려의 슬픔을 간직한 땅 쎈양에 내리다

쎈양(瀋陽)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이 곳에 대해 많은 지식은 없지만 역사책에서 쎈양, 그러니까 심양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대목을 기억한다.

몽골이 중원대륙을 지배하던 원나라시절 전쟁에 패한 고려는 왕자들이 수도인 북경(당시 명칭 연경)에 볼모로 머물렀고, 원라나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있는 고려왕과 별도로 심양에 '심양왕'을 따로 두었다.

고려 역사에서 공민왕이 등장하기 전까지 충(忠)자가 들어가는 왕들의 시대가 그렇다. 원나라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충자를 쓴 고려의 심양왕들은 요동지역에 사는 고려인들을 통치했다.

이처럼 옛날부터 심양은 또다른 고려왕인 심양왕이 머무는 일종의 또다른 고려의 수도였던 터라 오래전부터 발달된 도시였다.

그러나 심양에서 만난 조선족 가이드에게서는 청나라 태조인 누르하치와 그 아들 홍타이지의 이야기만 쏟아졌다.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한 이후 그의 아들 홍타이지는 심양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다가 만리장성 산해관을 넘어 대륙을 점령하면서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여진의 후예이고, 그들의 조상이 숙신, 읍루라는 점에서 고구려의 후예들인 셈이다.

또다른 한편에서는 청나라 황실 가문의 이름 성(姓)이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애신각라)'이고, 초창기 국호가 후금(後金)이었다는 점을 들어 신라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특히 후금 이전에 여진의 나라인 금(金)나라는 신라인 김함보(여진의 이름 완안함보·完顔函普)의 후손인 완안아골타가 세웠고, 조상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국호를 시조의 원래 성씨에서 따온 금(金·김)으로 했다는 설이 있다. 신라가 멸망한 후 산속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마의태자가 사실은 요동지방으로 건너가 금나라 왕조의 시조가 된 김함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

여기에 일부에서는 후금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친 점과 압록강 유역에서 여진족들과 어울려 살았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면 태조가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는 점 등을 비교해 강한 혈연적 관계를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심양은 우리에게는 고구려시대에는 수나라와 당나라 군대가 요동지역을 통과해 가는 길목에 있었던 요동성(현재의 랴오냥시)과 함께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터전을 삼고 살아가던 주요 요충지였던 것이다.

쎈양 공항에 내린 우리 일행은 고려의 슬픔이 묻어 있는 심양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라 타 압록강변에 있는 단둥을 향해 230㎞를 달렸다.


중국에서 만난 2층 형태 중국식 최고급 리무진 우등 버스. 그러나 아래층은 모두 짐을 싣는 화물칸이고, 2층만 승객이 탈 수 있는 구조다. 장점은 일반 버스보다 조금 높은 관점에서 풍경을 관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좁은 좌석 구조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힘들다. 이번 탐사에서는 두 좌석에 한 명씩 앉아 갈 수 있어서 양 옆으로는 여유가 있었지만, 여전히 앞뒤 사이폭이 좁아서 힘들었다. 하지만 중국인 여행객들은 51인석 모두 꽉 채우고 다닌다고 한다.


<계속>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② 단동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③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④ 대륙의 아침은 신의주의 태양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⑤ 북-중 국경이 맞닿은 땅 '황금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⑧ 집안(集安)의 추억, "진정구"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⑨ 고구려(高句麗) 광개토태왕비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⑩ 광개토태왕과 '태왕릉'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⑪ 동북아의 피라미드 '장군총'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⑫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고구려 동천왕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⑬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품고...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⑭ 백두산 비룡폭포와 온천
[특별한 동행-북중접경지역 리포트] ⑮ '훈춘'에서 나진-하산을 바라보며


/ 글.사진=소장환(free5785@)

반응형

'발길닿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관광상품이 된 북한  (0) 2014.11.19
단둥은 '안동도호부'에서 유래된 땅  (0) 2014.11.18
여름날의 추억...::  (0) 2014.08.18
고창 석정 휴스파~  (2) 2014.08.11
앗! 박물관은 살아있다? ::  (0) 2014.08.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