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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쓰고

기억ᆢ 17년이 흐른 뒤에

by 사랑화니 201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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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일의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17년 전을 떠올렸다.

2001년 1월 12일 아침.
원광대병원 중환자실,
기다리던 막내동생이 도착하고,
가슴 위에 얹혀진 두 손을 꼭 잡자,
힘겨운 그래프를 잇던 심장박동이 멎었다.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은 그렇게 찰라였다.

앰불런스 뒷자리에 앉아
점점 식어가는 아버지를 쓸어내리면서
군산의료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한 의사는 청진기도 꺼내지 않았다.

자그마한 후레쉬를 들고
동공의 상태만 확인한 다음
나를 쳐다보면서 서류에 시간을 적어 넣었다.
의사가 내리는 최종사망선고였다.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틀 밤을 버티고 난 뒤
셋째날 아침 운구차에 오를 땐
온 세상이 하얗게 묻혀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 발은
눈속에 푹푹 빠져 들었다.

얇은 셔츠에 검정색 양복이었지만
동생과 나는 추운 줄도 몰랐다.
그게 이생에서 떠나가는 아버지를 향한
남은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으니까.

벌써 17년 전이다.
갓 서른을 넘어가던 청년은
지금은 사십대 중년이 됐다.

그날 눈속에 이별했던 아들이
앞으로 십년 정도 지나면
아버지가 세상 떠나던 그 나이가 된다.

17년 전 아버지 삶 속
이생의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본다.

삶이란 이렇게 질기게 이어지나보다.

/글ㆍ사진=화니화니(free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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